오피니언 중앙시평

MB 정권,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다음 주로 예정된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역시 분당이다. 만약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라는 분당에서 당선될 수 있다면 야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서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보궐선거이지만 분당의 선거 결과는 이처럼 향후 대선 정국과도 맞물려 있다. 며칠 전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권 도전 의사를 시사했고, 국민참여당은 이미 유시민 전 의원을 대표로 선출했다. 내년의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의원밖에 안 보이던 분위기에서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올여름을 넘기고 나면 대선을 위한 후보들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임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세간의 관심은 이제 이명박(MB) 대통령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게 될 것이다.

 차기 대선 후보군의 부상을 바라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렸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과연 이명박 시대는 퇴임 후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을 되돌아보면 각각 그 나름대로 남겨진 기억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 김영삼 대통령은 군의 탈정치화와 금융실명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기억나는 업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여러 가지 사건에도 불구하고 취임 이후 이 대통령은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해 오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딱히 역사에 남을 만한 기억나는 업적이나 혁혁한 성과가 보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미래에 내려질 평가를 이 시점에서 예단하기란 쉽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4대 강 사업을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정책이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얼른 답을 하지 못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지만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물가는 오르고, 전세난에 더해 취업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원칙 있게 대응하고 있다고 하지만 남북관계는 민주화 이후 최악의 상황이고 이에 따른 안보 불안감도 커졌다. 자유로운 정치 참여나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이전 시기에 비해 확실히 후퇴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시장경제를 강조했지만 금융권을 비롯한 각종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났고, ‘관치’ 역시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외형상 ‘무난하게’ 국가를 관리하고 경영해 온 것 같지만 그 흐름이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것은 시대적 흐름을 읽고 거기에 맞춰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과 가치를 제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은 이전 정부와 비교해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나라는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한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의 결과는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때의 5공 청산이나 군의 탈정치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노무현 시대의 정치개혁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정파의 같고 다름을 떠나 한 대통령이 남긴 업적은 우리 사회가 뒤이어 가야 할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왔다고 신년 초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한번쯤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미래의 관점에서 그간의 공과를 엄정하게 평가하고 진단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 사회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이명박 시대는 어떤 역할을 했고 무엇을 남기려고 했는지 스스로 되물어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왜 열심히 일해 왔는데도 많은 이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도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내년이면 모든 관심이 선거에 몰리게 될 것이고, 더욱이 4월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금년 한 해가 이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임기 중 여론 지지도보다 대통령에게 더 무서운 것은 훗날의 평가일지 모른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