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전 서울선 전봇대도 구경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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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대문로에서 종로 쪽을 바라보고 서울 거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사람들이 전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봇대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 있다. 전봇대 곁엔 서양식 옷차림을 한 사람이 서 있다. 남대문로엔 1899년 12월 전차가 개통됐다.


지금부터 110년 전인 1901년 4월 서울 도심에선 전봇대 수리를 하는 것이 큰 구경거리였다. 서울 남대문로를 지나는 전철이 놓인 것이 1899년 12월이었다. 당시 서울 사람들이 서양 문물에 관심을 보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시절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길 옆엔 서양식 시계탑이 있었고, 여성들이 따로 치료를 받았던 병원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모습들이 110년 전 서울을 찾았던 한 서양인의 카메라에 기록됐다.

엔리케 스탄코 브라즈.

한옥 건물을 배경으로 간호사와 의사로 보이는 서양 여성과 환자인 여자 아이들이 서 있다. 이화학당안에 있었던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으로 추정된다.

 엔리케 스탄코 브라즈(Enrique Stanko Vraz·1860~1932). 여행가이자 작가, 사진가인 브라즈는 1901년 4월 27일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한국(당시 대한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5월 19일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24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모습과 경관을 카메라에 담았다.

 브라즈는 훗날 저서 『중국, 여행스케치』(1904)의 3장 ‘북경에서 한국을 거쳐 시베리아로’에 짧은 방문기와 사진을 실었다.

“한국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불릴 만큼 풍요로운 자연과 온화한 기후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에 속했던 체코 출신의 브라즈는 이 방문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1919년 4월 미국에서 발행된 체코어 신문엔 “나는 한국인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고도 썼다.

 브라즈가 찍은 사진 52점과 그가 썼던 카메라, 필름 등을 전시하는 ‘1901년 체코인 브라즈의 서울 방문’ 특별전(입장료 무료)이 오는 6월 12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역사박물관 조영훈 학예사는 “브라즈의 사진은 대한제국 시절의 서울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야로슬라브 올샤 주한 체코대사가 서울역사박물관 측에 브라즈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국립박물관을 소개하면서 이뤄졌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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