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국가관이 무너진다…'사이버 국가'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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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등장, 사이버 세상의 출현과 함께 국적과 국가개념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국경.언어.민족 등 국가를 구성하는 전통 개념은 변화해 영토 없는 사이버 국가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으며 국적을 사고 파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주어진 국적'' 이 아닌 ''선택 가능한 국적'' 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국적시장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은 올 신년호 1면에 미국 뉴욕에서 ''국적장사'' 를 하는 영국인 아리(34) 를 소개했다.

그는 맨해튼 번화가의 사무실에서 수수료 1백50달러를 받고 그라나다.도미니카 등 중남미 국적의 여권을 합법적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중국인 등 다른 국가에서 비자발급을 꺼리는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발급조건은 국적취득과 동시에 그 국가에 1만~3만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것. 그야말로 국적을 사는 것이다.

''국적시장'' 은 런던.파리.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마다 생겨나고 있으며 2중.3중국적을 원하는 구매자도 급증하고 있다.

◇ 사이버 국가의 등장

지구상에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는 사라졌지만 지난해 9월 인터넷 상에선 ''사이버 유고슬라비아'' 라는 신생국가(?) 가 탄생했다.

이 국가의 영토는 인터넷(http://www.juga.com)에만 있지만 국민은 9천3백여명. 이 사이트는 ''코소보 사태로 피를 흘린 발칸반도에서 평화를 신봉하는 자유인들이 모여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 라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사이버 국가 ''로마'' (http://www.lomar.com)는 최근 여권 발급업무를 시작했다.
지난 97년 인터넷 상에서 탄생한 이 나라는 전세계의 어떤 정부로부터도 자유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취지로 참가자들을 모으고 있다.

현재 등록된 참가자는 2천여명.
''로마'' 의 설립자 로렌트 트리네베르크는 "자신들이 소속된 나라에서 핍박받고 있는 사람과 국적없는 난민, 새로운 국적을 갖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식.정보를 공유할 목적으로 사이버 국가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사이버 유고슬라비아'' 와 ''로마'' 는 참가자가 수백만명대에 이르면 유엔에 정식 국가등록 신청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덴마크인이 만든 ''코르비니아공국'' 과 브라질에서 출발한 ''신성통일제국'' 등의 사이버국가도 등장, 온라인 상에서의 ''국가실험'' 을 하고 있다.

◇ 미니국가 추진

인터넷의 발달은 종래의 소형국가 건설을 꿈꾸던 많은 모험가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전세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미국 밀워키주의 한 농장에서 60여명이 모여 살고 있는 ''탈로사 왕국'' 은 최근 사이버 국가의 등장에 힘입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지역인들을 규합하며 전세계에 국민을 두겠다고 밝혔다.

70년대부터 호주 서부의 한 농장에서 2만명이 함께 살고 있는 ''허트리버 프로방스'' 라는 소형 국가 역시 이같은 추세에 맞춰 정식 국가 등록을 하겠다고 나섰다.

예일대 국제법전공 루스 웨지우드 교수는 "전통적으로 국가는 영토.인구.주권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처럼 주권이나 영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들이 스스로 귀속의식이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국가개념이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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