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 코 흘리개용 선물(과자)도 장마당으로 직행.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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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4월 15일)을 기념해 어린이에게 지급되는 과자 선물이 장마당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코흘리개가 먹을 것을 팔아서라도 식량을 사기 위해서다. '장군님의 은혜’로 여겨지던 귀한 선물이 굶주림 앞에선 한낱 식량수급용 물품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북한에선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에 전국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학생들에게 선물이 배급된다. 과자나 사탕, 젤리, 강정, 껌 등을 포장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쌀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에서 태양절 선물을 파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대북전문매체 데일리NK가 14일 전했다. 요즘엔 아예 태양절 선물을 대놓고 파는 매대도 생겼다. 선물 한 봉지는 2000원 선에 팔린다. 사정이 다급한 이들은 1500원으로 낮춰 내놓기도 한다.

탈북자들은 "선물을 팔면 쌀 1kg을 살 돈이 마련된다"며 "과거 김일성·김정일의 하사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명절 선물이 지금은 생활고를 덜어주는 역할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과자를 빼앗겨 서운해 하는 아이에겐 싸구려 옥수수 튀김과자를 쥐어준다.
원래 태양절 선물은 "대원수님과 장군님의 하늘같은 사랑에 충성으로 보답하자"는 맹세와 함께 초상화에 인사를 한 뒤 개봉할 만큼 귀하게 여겨졌었다.

'장군님의 선물'이 장마당에서 팔리는 굴욕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부터다. 주민 대다수가 기아로 허덕일 때도 선물은 중단되지 않았고 당장 먹을 것이 급했던 주민들은 선물을 내다팔기 시작했다.

당국의 단속도 형식적이다. 탈북자 함인숙씨는 "단속은 일시적으로 진행될 뿐 걸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선물은 주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들 간식용으로 사간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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