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둘러싼 언어의 유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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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02면

이한구와 유승민. 두 사람 다 대구에 지역구가 있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것도 공통점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저명한 경제학자였다는 점도 똑같다. 이 의원은 대우경제연구소 소장만 10여 년간 하면서 필명을 떨쳤다. 유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국내 최고의 ‘재벌 전문가’란 명성을 얻었다. 정치인이 된 후 국가 어젠다를 우선시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게다. 경제학은 국민경제를 분석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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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국익’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랏빚이 너무 많다고 걱정한 것도 일치한다. 이 의원은 정부가 국가채무 범위를 너무 작게 잡고 있다면서 ‘사실상 국가부채’는 정부 발표 수치의 4~5배라고 주장해왔다. 세금을 늘리기에 앞서 정부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며 ‘알뜰한 정부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유 의원은 재정건전성을 걱정해야 할 정부가 돈을 함부로 쓴다고 줄곧 비판했다. 경제성 없는 국책사업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자 태도를 싹 바꾸었다. 나흘 전 경남 밀양이나 부산 가덕도 모두 신공항 입지로는 적절치 않다는 결론이 났다. 사업비가 너무 많이 들고 경제성이 미흡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1을 넘어야 하는데 0.7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거란 의미다. 그렇다면 백지화하는 게 맞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바가 그렇다. 많은 국책사업이 혈세만 까먹고 있는 까닭 역시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타당성 조사를 아예 하지 않았거나,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는데도 억지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지역구와 관련된 신공항 문제가 불거지자 그들은 무조건 ‘백지화 반대’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 공약으로 재추진하겠다고도 한다. 물론 정치인에게 표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들은 지방의원이 아니다. 국가 어젠다를 다루고 국익을 우선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 데도 그들의 책임이 크지 싶다. 박 전 대표는 “지금은 경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미래에는 분명히 필요할 것”이라며 ‘미래 국익’이란 표현을 썼다. 국민을 상대로 한 ‘언어의 유희(遊戱)’ 같은 느낌을 준다. 미래 국익과 현재 국익은 다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미래 국익까지 다 계산한 게 현재 국익이다.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경제성 분석은 비용과 편익을 놓고 저울질하는 거다. 지금 것만 따지는 게 아니라 미래 것도 같이 계산한다. 현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항공 수요를 계산할 때 지금 것만 하는 게 아니다.
20~30년 후의 수요까지 미리 예측한다. 신공항이 생기면 인천공항으로 가지 않고 신공항으로 옮기는 영남 주민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전환 수요까지 다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 지역 낙후도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감안한다. 경제학자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경제성 분석이 그러하다. 이걸 경제학자인 두 의원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가 ‘미래 국익’이란 표현을 쓴 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영남권 표를 고려한 정치공학적 접근이거나, 두 사람이 참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어느 쪽이든 국민의 판단을 어지럽게 했다는 건 마찬가지다.

이게 나중에 그들의 뒷다리를 잡을 거다. 경제성 없는 국책사업들을 말릴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제성이 전혀 없어도 ‘미래 국익’ 운운하며 계속 추진하겠다면 대체 어쩔 셈인가. ‘신뢰의 정치’를 강조하는 박 전 대표이기에 더욱 난감할 것이다. 나라야 어찌 되든 오로지 표만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장래를 맡겨도 되는지 걱정되는 이유다. 아무리 정치판이 시류에 편승해 말과 행동을 조변석개하는 곳이라고 해도 이한구, 유승민 두 의원은 그래선 안 된다. 나라 경제를 볼모로 삼는 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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