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정치는 청춘을 아프지 않게 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젊음이 알 수만 있다면, 늙음이 할 수만 있다면(Si jeunesse savait, si vieillesse pouvait).” 청춘에는 힘은 있으나 지혜가 없고, 노년에는 지혜는 있으나 힘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영어로도 번역돼 쓴다(If youth but knew; if old age but could).

 지혜는 지식과 달라 경험과 연륜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쌓아가는 면도 있다. 그러나 청춘은 독서를 통해 나이를 ‘앞당겨’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하려는 젊은이들 덕분에 요즘 독서계에는 ‘청춘 열풍’이 불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스무살, 절대 지지 않기를…』(이지성 지음),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지음) 같은 청춘 안내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청춘 지침서에서 지혜를 얻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은 무엇일까. 천안함 폭침을 경험한 P세대는 애국심(Patriotism), 유쾌(Pleasant), 평화(Power n Peace), 실용(Pragmatism), 개성(Personality)으로 규정할 수 있다.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2003년 처음 제시했다는 P세대의 특징은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잠재력(potential power), 패러다임 변환자(paradigm-shifter)로 특징 지을 수도 있다.

 청춘 베스트셀러가 각광받는 이유는 P세대가 공감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나온 청춘 지침을 바탕으로 P세대의 특징을 재구성해보면 P세대는 ‘U세대’이기도 하다. U세대는 일자리가 없다(Unemployed). 인생에서 뭘 할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했으며(Undetermined), 하고픈 일이 있어도 충분한 정보가 없으며(Uninformed), 준비가 돼있지 못하며(Unprepared), 따라서 행복하지 못하다(Unhappy).

 U세대 잘못이 아니다. U세대는 엄친아와 비슷하게 되기 위해 노력해온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세대다. 대입 전형 개수만 3600개가 넘은 ‘난수표 대입’에 성공해 대학에 진학해서는 스펙에 맞추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실업률은 8~9%에 달하며 스펙을 얼추 갖춰도 기업은 ‘뽑을 인재가 없다’며 외면한다. 우리의 청춘인 20~30대는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벌써 머리가 빠지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사면초가인 U세대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스무살, 절대 지지 않기를…』 같은 청춘 베스트셀러들은 위로·격려와 더불어, 때로는 완곡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매일 처절하게 실패하라(이지성 작가)”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김난도 교수)”라는 말들은 사실 청춘에서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이지성 작가의 책에 나오는 “한국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마”라는 문구다. ‘한국이 바뀐다’는 기대, 아니 가시적인 성과를 줄 수 있는 곳은 무엇보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다. 각 세대에 특화된 정책이 나와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대형 국책사업 공약을 내세우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막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형 국책 세대 정책’은 지금까지 사실상 지역표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해 온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한 유력한 대안이다.

 대통령은 25일 ‘P세대’를 언급했다. “P세대 혹은 G20세대라고도 하는 젊은이들이 합리적으로, 진정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회계층·소득·직업·교육·종교·지역과 더불어 각 연령 그룹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이다. 지역 구도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좌우를 초월하기 시작한 P세대에는 P세대에 맞는 정책과 공약이 필요하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