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휘청거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한빛은행 본점 9층 회의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업체인 고합의 임원과 은행 관계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고합측이 출자전환 이후 채권단이 보유 중인 지분 가운데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장치혁(張致赫) 전 회장에게 되팔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측은 경영부실로 불과 1주일 전에 1조8천억원의 2차 출자전환까지 받았다는 점을 들어 고합측의 요구를 거부했다.

워크아웃이 중병을 앓고 있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골라 빚부담을 덜어준 뒤 이른 시일 안에 되살려 기업.채권단이 함께 살아보자고 도입한 워크아웃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일 현재 워크아웃 대상 기업은 82개사로, 여기에 묶인 금융기관 빚만도 33조6천억원에 달한다.
곧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워크아웃이 실시되면 빚은 1백10조원으로 늘어난다.
내년 한해 국가 예산(92조7천억원) 보다 많은 돈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워크아웃 기업 중 상당수는 경영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본지가 단독 입수한 '99년 상반기 워크아웃 기업경영평가' 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48개 중 ▶A등급 6개▶B등급 20개▶C등급 13개▶D등급 7개▶E등급 2개로 나타났다.

목표달성 비율이 아주 낮아 경고 등의 조치가 내려지는 C등급 이하의 회사만도 절반 가까운 22개나 된다.

특히 이들 가운데 워크아웃 계획상 내년부터 이자를 갚아야 하는 갑을.동국무역.신원.우방 등은 이자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 대상 기업들의 자구노력도 부족하다.
지난 9월말 현재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자구실적은 목표치의 34%에 불과했다.

채권단 내부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동국무역의 경우 최소 3천억원을 출자전환해야 회생할 수 있다는 실사법인의 조사 결과가 나왔으나 채권 금융기관들의 비협조로 1천4백억원을 출자전환하는 데 그쳤다.

이재형(李在亨) 앤더슨컨설팅 사장은 "워크아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실책임이 있는 기업주를 교체하고, 워크아웃 시행 중에라도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오호근(吳浩根)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은 "워크아웃 시행 후 1년반이 지나고 보니 3곳 중 1곳은 잘못 선정됐다는 게 뚜렷해졌다" 며 "기업주.경영진 및 채권단이 워크아웃의 목표와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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