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의 〈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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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어느 날인가 독일놈들이 스로둘라에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아우슈비츠로 끌고 갔단다. 애들은 대부분 끌려갔는데 어떤 애는 두세 살밖에 안됐지. 어떤 애들은 계속 소리를 질러댔지. 울음을 멎게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독일놈들이 애들 다리를 잡고 벽에다 후려쳐 버린거야... 그 아이들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제1권 「아버지에게 맺혀 있는 피의 역사」108페이지중에서)

1992년 퓰리쳐상을 수상한 만화, 아트 슈피겔만의 쥐. 도대체 어떤 만화이길래 퓰리처상까지 수상하였을까? 쥐는 만화가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1930년대 중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겪었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생존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고있다.
여기서 유태인은 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프랑스인은 개구리 (아트의 아내인 프랑소와즈는 프랑스인이지만 예외다. 유태인처럼 쥐로 그려진다.), 스웨덴인은 사슴 그리고 미국인은 개로 그려지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7개의 오스카를 거머쥐었음에도 불구, 마지막장면에서 어색한 느낌을 받은 관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제까지의 사실적 장면들에서 조금은 인위적인듯한 결말을 맺고있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슈피겔만의 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독하게도 사실적이다. 오히려 이 작품이 만화라는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만화중에서도 사람으로 그려진 대상은 하나도 없이 모두 동물로 그려진것이 또한 다행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사실적인 스토리에 대상마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면 독자들이 받는 충격은 더 컸으리라.

슈피겔만은 책속의 책의 양식을 빌어 어머니인 아냐의 실제사진과 함께 삽입된 「지옥행성의 죄수」는 작가 어머니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 흑인에 대한 아버지의 인종차별발언도 여과없이 삽입되어있다 (아마 이점은 제2권이 아버지의 죽음후에 발간되었기 가능했으리라). 작가가 아버지를 "살인자" 혹은 "이 빌어먹을 양반"이라고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나찌치하에서 유태인들을 결코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준 사람들은 아무도 없으며 모두들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대가를 받고서 도와주었다는, 특히 일가친척끼리도 금전적 보상을 받고서야 곤경에 처한 유태인 친척을 도와주었다는 설명등은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알려준다.
유태인조차 슈피겔만의 표현에서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고 있는것이다. 작가는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건을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되도록이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인위적인 장면들도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중의 유태인들에겐 오로지 생존의 최대의 선이었으며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한 나찌치하의 대부분의 유태인들에게 생존이란 기적에 가까웠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죽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으며, 친한 친구들이 거리에 목매달려 있는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귀엽기만한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같이 행군하던 동료가 총에 맞에 신음하며 구르는 모습을 보며 개가 죽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져야했고 자신의 죽음날짜를 아는 사형수가 되기도 하여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알수있겠냐만, 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는 있다.
사람의 가치관이 적용되지않는 상황, 전쟁. 아우슈비츠를 빠져나가는 길은 단 한가지, 굴뚝의 연기가 되어서 나가는 방법뿐. 책의 서문에 아돌프 히틀러의 말인 "유태인들은 하나의 인종인 것은 틀림없으나 인간은 아니다."를 싣고 있으나 전쟁당시 나찌는 하나의 인종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인간이 아니었다.
쥐는 독일어를 포함한 수십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발간되었고 국내에도 정식경로로 번역되어 1권과 2권이 출간되어 있다. 마치 판화작품을 보는 듯한 단순화된 선과 배경으로 그려진 작품은 점점 읽을수록 그 맛을 깊게 해준다.

IMF시대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자살에 대한 뉴스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이 긴 수렁은 끝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많은 부분들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IMF를 경험하는 우리들에게 쥐는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한다. 말 한마디에 죽음과 삶이 갈리는 상황에서에서 빵한조각으로도 행복을 느꼈던 슈피겔만 가족의 생존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분명히 용기를 가지게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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