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억짜리 ‘멋진 신세계’가 애물단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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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충북 옥천군 장계관광지 내 놀이시설이 철거되고 있다. 관광지를 위탁 운영하던 업체는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을 신청해 테마공간 멋진 신세계도 피해를 입고 있다.


22일 오후 충북 옥천군 안내면 장계관광지. 입구에 설치된 매표소가 문이 굳게 닫힌 채 방치돼 있다. 건물 외벽에 ‘어른 1000원’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요금을 받는 직원은 없다. 안으로 들어서자 체험·판매시설인 모단가게·모단카페·모단스쿨의 문이 잠겨 있다. 유리문과 손잡이에 먼지가 쌓여 문을 닫은 지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편의 향토전시관은 문을 열었지만 관람객은 한 사람도 없다. 전시관 직원은 “이 곳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평균 10명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군이 시인 정지용(1902~1950)을 주제로 27억3000만원을 들여 조성한 테마공간 ‘멋진 신세계’가 준공 1년 만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옥천군은 2008년 행정안전부의 신활력사업에 선정돼 국비 12억9000만원을 받았다. 군은 국비에다 군비 14억4000만원을 보태 테마공간을 만들기로 하고 2년여 간의 공사 끝에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테마공간은 정지용 시인 생가와 장계관광지를 잇는 벨트로 이야기 길과 광장, 간이무대, 관찰데크 등으로 꾸며졌다. 관람객 편의를 위해 카페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던스쿨도 마련했다.

 옥천군은 매년 정부에서 지원하는 2억원의 운영비를 받아 테마공간을 운영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더구나 올해는 정부 지원마저 끊겨 군에서 운영비를 떠안게 됐다. 운영비가 바닥나자 체험·판매시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군은 3000만원의 예산을 긴급하게 투입해 겨우 시설 유지·보수를 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하고 있다. 애초 테마공간 조성 목표였던 체험프로그램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명예관장과 직원 등 3명이 일하고 있는 향토전시관도 사실상 폐업 상태다. 관람객이 없기 때문이다. 1000원이던 입장료를 무료로 전환했지만 휴일에도 관람객이 30여 명에 불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2년부터 장계관광지를 위탁 운영하던 업체가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했다. 업체는 지난달 중순부터 놀이시설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 옥천군이 멋진 신세계 홍보를 위해 1억원을 들여 설치한 조형물도 함께 뜯겨나가 “군이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올해 옥천군의 예산은 2903억원, 재정자립도는 14.4%(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옥천군이 무리하게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장기적으로 예산만 낭비하게 됐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군은 장계관광지 일원을 친수구역으로 지정받아 재정비할 계획이지만 정부와 충북도 등 상급기관과 협의가 필요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옥천군 송경선 관광개발팀장은 “지난해 옥천문화원에 2억원을 주고 운영을 맡겼으나 올해는 돈이 없어 직영해야 한다”며 “다음 달부터 문화해설사를 추가로 배치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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