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즐기는 중·고학생들 "성격 밝고 훨씬 사교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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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동호회에 참여하면서 지식을 많이 쌓게 됐다. 가끔 선생님이 몰라서 물어보는 것도 답할 수 있어 흐뭇하다. 진로도 컴퓨터쪽으로 정하고 싶다. "

"원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채팅을 하면서 부끄러움이 많이 없어졌다. 숫기가 없어서 말도 잘 못 걸었는데 성격이 밝아졌다. " 이는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최근 발표한 청소년 면접조사 내용의 일부다.

청소년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부모는 걱정부터 한다. ''음란물을 보는 것은 아닐까'' ''컴퓨터에 중독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컴퓨터의 위력은 인정하지만 컴퓨터 속의 세상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부모는 각종 부정적인 컴퓨터 관련 보도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기우(杞憂) 인 것 같다.

최근 잇따라 개최된 청소년들의 사이버 문화에 관한 토론과 포럼은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그렇지 못한 청소년들보다 훨씬 긍정적이며 컴퓨터 역기능에 대한 논란을 무색하게 할 만큼 사이버공간에서 그들만의 원숙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최근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1천8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들의 사이버문화 실태 조사 결과는 컴퓨터와 친숙하면 공부도 안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이동혁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원은 "인터넷.PC통신을 이용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유행에 민감하고 사교적이었으며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생활적응력도 뛰어났다" 고 말했다.

또 인생에 대한 계획도 더 확실했다는 것. 조사대상 중 인터넷과 PC통신을 이용하는 학생은 전체의 64%. 이 상담원은 "이를 이용하지 않는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는 경향은 적었으나 자주 긴장하고 불안해 했다" 고 말했다.

컴퓨터 이용시간도 대부분 하루 1시간 이내(이용자의 67.8%) . 1~5시간 이용한다는 이는 27.8%였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주로 학습.정보습득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고 정보검색 내용도 연예정보.학업 및 진로정보.문화정보 순으로 성 관련 정보 검색의 비중은 가장 낮았다.

청소년들은 이미 사이버 공간에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 키워나가고 있기도 하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이 지난 7일 가졌던 ''사이버 세계와 청소년'' 포럼에서 네트워크 게임에 대해 발표한 신일중학교 이상진군은 "현재 ''레인보우식스'' 클랜(동호회란 의미) 인 B2LK의 멤버로 활동중" 이라며 "이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을 모아 클랜을 만들어 다른 클랜들과 대전을 갖는다" 고 소개.

李군은 "어른들은 게임을 나쁜 것으로만 여기지만 게임 속에서 우리들은 얻는 게 너무 많다" 고 말했다. 李군은 ''게임 중 작전을 세우고 궁리를 하면서 머리가 좋아졌다''''나름대로 순발력과 상황판단력이 생겼다''''소심하던 이가 게임을 잘 하게 되면서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웹진과 인터넷 방송국도 이들에게는 한 세상이다. 특히 웹진.인터넷 방송국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들이 더더욱 모르기 때문에 이들의 답답함은 더하다.

동성고등학교 조성도군은 웹진 ''채널텐'' 을 운영했던 경험을 발표하면서 "어른들이 채널텐 제작을 공익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잘못은 높으신 분들과 친하지 않은 인터넷에 있다. 나쁜 인터넷!" 이라며 인터넷에 무지한 기성세대들을 우회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왕의 수많은 염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PC방이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않는 열악한 곳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고, 청소년 스스로 ''컴퓨터 이용을 자제하기 힘들어 성적이 떨어진다'' 는 고백도 했다. 때로 통신 상에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전응휘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발전위원(피스넷 사무처장) 은 "사이버 스페이스는 청소년들의 질식할 듯 숨막히는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신천지" 라며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사이버 문화공간을 ''금지'' 라는 잣대로 섣부르게 보호하려 들기보다는 청소년 문화에 주목하고 격려와 안내를 해야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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