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개인전 초청받은 X레이 예술가 정태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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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태섭 교수가 자신이 아끼는 엑스레이 작품 ‘튤립 꽃밭’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X선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장 정태섭 교수(57)가 예술의 본고장인 파리의 미술대학 초청을 받아 전시회를 갖게 됐다. 미대 교수도 쉽지 않은 파리 개인전을 의대 교수가 프랑스 미대 교수의 초청을 받아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정 교수의 작품 18점은 이달 30일부터 한 달 간 프랑스 파리 AUP(American university of Paris) 대학 콤베 갤러리에 전시된다.

 정 교수가 ‘X선 아트’를 시작한 것은 17년 전. 교수 임용 초기에 집에 갈 시간이 없어 부인과 아이들을 병원으로 불러 만나곤 했던 게 시작이었다. 가족에게 뭔가 기념이 되는 이벤트를 해주고 싶어 마침 옆에 있던 엑스레이로 가족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가족 모두가 해골로 찍혀 나온 사진이 그의 첫 작품이다.

 그 뒤 그의 아트는 점점 발전해나갔다. 업무를 끝낸 밤 늦은 시간, 주말 자투리 시간 등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점점 유명해졌고, 2007년 3월부터 전시회를 시작해 단체전 16회, 아트 페어에 10회 참가하고 개인전도 8차례 열었다. 지난해에는 그의 작품이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프랑스에서 메일이 왔다. 파리 AUP의 미술대 랄프 페티 교수가 자신의 학교 갤러리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제안이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장르의 작품이라 학생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는 게 페티 교수의 제안 이유였다. 알고 보니 2009년 가졌던 정 교수의 개인전에서 작품을 사간 사람의 가족이 프랑스 문화계의 저명 인사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 교수의 작품을 소개해 화제가 됐고, 페티 교수가 정 교수를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 교수는 “프랑스 미술계는 특히 창의성을 중요시하는데, 처음 보는 장르인 내 작품이 신선한 자극이 됐던 것 같다. 일반 사진기는 가시광선만 이용하기 때문에 신체나 사물의 겉모습만 표현할 수 있지만 엑스레이를 이용하면 우리가 볼 수 없는 깊숙하고 미세한 부분의 아름다움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작업에 몰두해 의사 역할에 소홀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에 대해 정 교수는 생각이 다르다.

 “엑스레이로 다양한 사진을 찍으면서 영상 판독하는 일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영상을 어떤 각도에서 빛을 얼마나 쪼이고 어떤 전압으로 찍는가에 따라 판독 결과가 달라진다. 영상의학과 의료진의 판독 결과에 따라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달라진다. 나는 작품활동을 하며 영상기기를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딱딱하고 차갑다고 생각하는 의학, 그 중에서도 기계를 다루는 영상의학이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로 큰 보람을 느낀다. 환자들이 병원에 걸린 내 작품을 보며 마음을 위로 받고 의사를 더 가깝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배지영 기자

◆X선 아트=인체 내부를 찍는 의료용 X선 장비를 이용해 사물이나 인체를 찍어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 일반사진은 가시광선을 이용해 사물의 겉만 표현하지만 X선은 사물의 표면을 통과해 내부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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