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미지와 싸우는 부시-매케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 미국 뉴햄프셔州 맨체스터市에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6명의 TV 토론회가 열렸다.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진영은 그가 손목시계를 차고 나갈지 여부 등 세심한 신경을 썼다. 부친인 조지 부시 前 대통령은 92년 선거 당시 빌 클린턴 후보와의 TV 토론 때 시계를 찼고 결과는 패배로 이어졌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혔고 그것은 부시가 무대를(어쩌면 백악관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부시는 결국 시계를 차되 절대 보지는 않기로 했다. 다른 것들에 대한 준비는 완벽했다. 부시는 쏟아질 모든 예상질문을 익혔고 힘든 모의토론도 거쳤다. 참모진은 스티브 포브스 후보에게 써먹을 결정적 약점까지 찾아뒀다.

한편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州)
은 비교적 느긋하게 토론에 대비했다. 그는 유세버스를 타고 곳곳을 누비며 인터뷰에 응했다. 또 이번 선거유세의 60번째 ‘시민과의 대화’에서는 무대를 오가며 청중의 질문을 받았다. 저녁식사 때는 웃으며 자신이 CBS TV의 마이크 월리스 기자에게 기습공격을 받고 꼼짝 못했던 때를 회상했다. 이튿날 매케인은 WMUR-TV의 출연자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방송시간을 기다렸다. 누군가가 그에게 골치아픈 국제문제, 예컨대 투르크메니스탄에 관한 질문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그는 무표정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선거유세가 치열한 뉴햄프셔州에선 공화당의 후보지명전이 부시-매케인 양자 대결로 좁혀지고 있다. 언론과 공화당 경쟁후보들은 둘의 싸움을 ‘우둔한 후보’와 ‘성급한 후보’의 싸움으로 비유한다. 부시는 참모들의 철저한 지도를 받긴 했지만 전국적으로 검증받지 못했고 매케인은 겉으론 명랑하지만 매우 공격적이라는 뜻이다. 뉴스위크가 뉴햄프셔州에서 두번째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매케인에 대한 부시의 우세가 지난달의 44% 對 27%에서 지난주 토론 이후엔 38% 對 33%로 좁혀졌다. 후보지명전이 두 후보 대결로 압축될 경우엔 그 격차가 47% 對 45%로 줄었다.

부시와 매케인은 지금은 서로 치켜세우고 있다. 부시는 “매케인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매케인은 어떤 경쟁후보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조지 부시에 대해 말할 이유가 없다. 뉴햄프셔州의 유권자들은 우리를 동등한 후보로 바라보고 있으며 나는 꽤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두 후보는 유세열풍이 美 전역을 휩쓸기 전에 자신의 고질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매케인은 베트남戰 포로 경험이 대통령직 수행에 영원한 정신적 결격사유가 된다는 항간의 주장을 불식해야 한다. 지난주 그의 선거진영은 그가 월맹군 포로에서 풀려나 귀국한 73년부터 93년까지 받은 美 해군병원 신체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매케인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상태가 양호함’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매케인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이번에 공개된 20년간의 신체검사 결과에서도 정신상태가 ‘양호’ 이하로 평가된 적은 없었다. 그가 포로 시절 자살을 기도했었다는 언급은 있지만 그에게 자살 성향이 보인다는 증거는 없다. 또 아버지와의 힘든 관계로 인해 갖게 됐다는 성격상의 문제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그는 74년 그 문제와 관련해 해군 심리학자와 상의했으며 심리학자에게 “마침내 아버지의 그늘에서 헤어났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부시의 이슈는 정신상태가 아니라 좀더 추상적인 것이다. 예컨대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될 경륜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뉴햄프셔 주민들은 일단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그곳 공화당 유권자들은 대통령에 걸맞은 지성과 교육수준을 갖춘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에 88%가 부시라고 대답했고 79%는 매케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부시는 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 때 그랬듯 또다시 질문공세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비판자들은 그를 이름과 연줄을 이용하는 것밖에 모르는 풋내기로 묘사했다. 그러나 부시는 참모들이 마련한 치밀한 각본에 따라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 후로는 구체적 정책활동에 초점을 맞춰 비판자들의 우려를 불식했다. 지난주 그는 TV 토론에서 “알맹이 없는 후보라는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선순위를 매기고 주민을 이끌어가며 정책을 추진하는 법을 안다. 정 궁금하면 텍사스州로 가보라”고 말했다.

모든 유권자가 텍사스州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TV를 통해서는 그게 가능하다. 지난주 TV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은 자신이 내세우는 기본 이슈를 충분히 숙지한 것으로는 보이지만 사전 원고에만 집착하는 한 후보의 모습을 보았다. 부시는 자신의 독서습관에 대한 질문에 순간적으로 움찔했고,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는 대놓고 위협을 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매케인은 자신감과 유머감각을 선보였다. 토론 전에는 뉴햄프셔州 공화당 유권자의 70%가 부시를 민주당 후보와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로 생각했지만 토론 후에는 그 비율이 55%로 줄었다.

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이제 막 시작됐다. 부시 前 대통령은 이번에 민주당전국위(DNC)
의장직을 맡게 된 에드 렌델에게 보낸 편지에서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을 너무 세게 몰아붙이지 마시오. 원래 착한 애요.” 그러자 렌델은 “마음 놓으시오.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진 않겠소”라는 답장을 보냈다. 아버지의 추천서라니, 참 별난 구상이다. 전에는 그런 것이 통했는지 몰라도 이번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Howard Fineman 워싱턴 지국 기자
뉴스위크한국판 (http://nwk.joongang.co.kr) 제 408호 1999.12.1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