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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전쟁, 교육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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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의기
세계무역기구(WTO) 선임참사관

실업률이 9%가 넘는 미국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는 고용문제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여부도 실업률의 수치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 역시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청년 실업문제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얼굴을 그늘지게 하고 있다. 대학원으로, 해외 유학으로, 군대로 취업 재수를 피해 보지만 그럴듯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의 사정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얼마 전 집을 사려고 UBS 은행을 찾은 적이 있다. 담당 직원이 이자율 추세, 집값 추세, 여러 가지 조건에 따른 주택담보대출의 도표를 보여주며 설명을 유창하게 잘 하기에 내심 유명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온 것으로 짐작돼 출신 대학을 물어 보았다. 대답은 뜻밖에도 전문대(직업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전문대만 나와서 이렇게 세계적인 대형 은행에서 전문가로 당당히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 이처럼 스위스에서는 전문대학만 나와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다. 직업학교와 전문대에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직업학교 간다고 해서 아무도 슬퍼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직업학교를 나와도 얼마든지 좋은 집에서 아름다운 배우자와 잘 살 수 있다. 나는 스위스가 잘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위스는 호텔 관련 우수대학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영국 TNS(Taylor Nelson Sofres)가 52개국 275개의 호텔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위스 대학이 상위 3위까지를 휩쓸었다. 매년 이 호텔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많은 나라의 학생들이 스위스로 몰려든다. 더구나 이 학생들이 인턴사원으로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낮은 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니 스위스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다. 물론 이 호텔학교가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힐튼·하얏트 등 유명 호텔 체인에서 학교를 설립하거나 투자해 운영하고 있다. 기업과 교육이 만나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고급시계로 유명한 기업들도 시계학교를 설립하고 자기들의 기술을 전수한다.

  세계는 일자리 전쟁 중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교육전쟁이다. 교육의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계가 바뀌는 현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내용을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연마시켜 젊은 세대로 하여금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대학을 나오고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졸업생이 전체의 반이나 된다면 우리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왜 스위스의 호텔 대학, 시계 대학을 쳐다보면서 부러워하고만 있어야 하나. 우리도 영리 법인이 대학을 설립해 해당 기업이 원하는 기술교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

김의기 세계무역기구(WTO) 선임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