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찾아서] 일상 탐구 … 집 안을 한번 둘러 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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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까치
568쪽, 2만5000원

초컬릿이며 사탕, 비스킷으로 가득 찬 방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럴까. 이 책은, 읽을수록 감당하기 힘든 진수성찬을 맛보는 기분이다. 언뜻 위압적인 제목에 제법 부담스런 분량인데도 그렇다.

 지은이 덕분이다. 미국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저널리스트인 브라이슨의 유머 감각과 정심박대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저서 중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나를 부르는 숲』은 읽는 이를 데굴데굴 구르게 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냈다. 고급스런 유머 작가인가 싶었는데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선 깊이와 재미를 두루 제공하는 과학사 전문가로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엔 은근한 웃음과 감탄스런 탐구정신이 어우러졌다.

1790년대 유럽에서는 기름 먹인 양모와 말총을 자기 머리카락과 뒤섞어 머리모양을 하늘 높이 치솟게 하는 것이 유행했다. 사진은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탈의실 편’에 실린 그림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일상생활의 역사를 파고 든 것이다. 영국 노퍽 주의 한 목사관(館)으로 이사간 지은이는 어느날 다락에 올랐다가 지붕으로 이어지는 비밀문을 발견한다. 지붕 위에서 주변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던 그는 문득 역사를 이렇게 보면 어떨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전쟁이나 국제조약을 연구하는 데 공을 들이면서 왜 먹는 것, 자는 것, 성행위 등 일상의 역사는 소홀히 하는가란 의문을 품은 것이다.

 브라이슨은 자신이 사는 목사관을 탐방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물론 인류사의 전반이 아니라 런던에서 ‘만국 산업박람회’가 열렸던 1850년 이후, 그러니까 근대의 형성기 150년 동안의 ‘사소한 것들의 역사’를 다뤘다. 벽에 달린 두꺼비 집 안을 들여다 보며 조명, 석유, 전기의 발전과정을 살피고, 화장실에서 위생과 목욕의 역사를 조명하는 식이다. 한데 이것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부엌’ 편을 보자. 18세기 영국에선 불량식품이 판을 쳤는데 런던의 빵은 “백묵, 명반, 골회의 혼합물로 맛은 싱거운데다가 신체에는 파괴적”이란 평을 들을 정도였다. 당시 가계지출의 80%가 식품 관련이고, 그 중 80%가 빵 값이었는데도 그랬다. 당연히 단속이 엄격했을 수밖에. 빵 무게를 속인 제과업자는 한 달 동안의 중노역 형에 처해졌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유형도 논의됐다. 빵을 굽는 과정에서 증발작용을 통해 무게가 줄었으므로 제과업자들은 본의 아니게 실수를 범할까 걱정스러웠단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덤이었다. 13개를 뜻하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 ‘제과업자의 12개(baker’s dozen)’은 빵 12개를 사는 고객에게 1개씩 더 얹어준 데서 유래됐다.

 얼음 사용, 통조림 등 식품보관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영국 귀족의 식탁에서도 ‘작은 애벌레’가 꿈틀거리는 음식을 보기 일쑤였다. 이에 착안한 미국인 프레데릭 튜더는 1844년 매사츠세츠 주의 웨넘 호수 얼음을 런던에 가져가 팔았는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를 본 노르웨이 사람들(지은이는 약삭빠름을 이야기할 때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란 풍자를 곁들였다)이 오슬로 인근 호수의 이름을 웨넘으로 바꿔가며 이 수지맞는 시장에 끼어들었다고 한다.

 누구든 평생 30% 안팎의 시간을 보내는 ‘침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침실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불순물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탓이었다. 이 때문에 개인 불순물의 혼합 위험성을 감소하기 위해 부부에게 트윈 침대가 권장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의사 중에는 “피부 털구멍을 통해 빠져나온 독성 물질이 함유되었으므로 침구 아래 공기는 극도로 불순하다” “미국 사망자들 가운데 최대 40% 가량은 잠자는 동안 건강에 나쁜 공기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성의 정액은 자연산 불로장생약으로 간주했다. 그러니 결혼한 부부라도 정액은 ‘검소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했기에 부부생활도 최대 1개월에 1회까지만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는 지금 깨끗하고 따뜻하며 배부른 상태를 위해 누리는 갖가지 편의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너무 익숙한 탓이다. 책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많은 선구자들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일깨워 준다. ‘집’ 또는 ‘일상’이란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시크릿 하우스』(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생각의 나무)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일상 행위를 과학적으로 조명했는데 쉽고, 재미있게 교양을 쌓을 수 있는 탁월한 책이다.

김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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