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세기 과학인물] 자연과학 ② 이휘소 박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0월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됐을 때 적잖은 국내 물리학자들이 무릎을 쳤다. "이휘소(李輝昭) 박사가 살아 있다면 이번에 공동 수상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李박사는 전문가는 물론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다. 그의 명성은 단지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이나 박정희 대통령과 맺은 남다른 인연(핵개발) 때문만은 아니다.

77년 그가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미 페르미연구소 윌슨 소장은 "李박사는 세계 20위 이내에 드는 훌륭한 이론물리학자였다" 며 애도했다.

그러나 윌슨 소장의 이런 발언조차 그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아니었음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으로 다시 확인됐다.

전자기력과 약력(弱力) 을 수학적으로 하나의 틀로 설명한 이른바 재규격화(再規格化)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공로. 71년 첫 발표 당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이 李박사였다.

李박사는 74년 ''매혹 입자들의 탐색'' 이란 논문을 발표하고 ''매혹 쿼크'' 의 존재를 예언했다.실제 그의 이론대로 2년 뒤 이 쿼크와 관련된 소립자를 발견한 한 그룹의 물리학자들이 76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이런 천재성은 일찍부터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경기고 2학년에 재학 당시 검정고시로 서울대에 수석합격한 그는 서울대 화공과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다.27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그에게는 ''천재 핵물리학자'' 라는 별명이 따라 붙게 된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그를 주목한 것은 71년께.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던 朴대통령은 핵개발 의지를 굳히고 그와 접촉한다. 77년 청와대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20여일 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애국심도 남달랐다던 그의 이 석연치 않은 최후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선정과정
자연과학1(물리.천체.지구과학) 분야에서 추천전문가그룹으로부터 최다 추천자 1인을 선정함.

추천전문인
물리분야 : 권숙일.민동필(이상 서울대) .이주천.신성철(이상 과학기술원) .이동녕.김재삼(이상 포항공대) , 지구.천체과학분야 : 박순웅.조문섭(이상 서울대) .김정우.천문석(이상 연세대) .박석재(한국천문연구원) .최위찬(한국자원연구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