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 워치] 동일본 대지진 돌출로 조정 길어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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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큰 기대를 안고 출발한 2011년 증시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인플레 걱정을 증폭시켰던 중동의 정정 불안이 좀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이번엔 일본 동북부 대지진의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상상을 초월한 지진 피해를 지켜본 사람들은 뒤이어 경제와 시장에 미칠 파장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본 대지진 직후 열린 유럽과 미국 증시는 일단 차분한 흐름을 보였다. 국제 원자재와 외환시장도 안정된 모습이었다.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0.5~1%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GDP가 2%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예상되는 경제적 피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 각종 복구 사업과 재정 방출로 글로벌 경제가 덕을 볼 것이란 기대까지 나온다. 반도체와 자동차·유화·철강 등 분야에선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엄청난 자연재난이 악재면 악재지, 호재일 수는 없다. 일본은 한국에 큰 교역 상대다. 수입이 GDP 대비 15%, 수출은 6% 정도에 달한다.

고베 대지진 때도 그랬다. 지진 발발 이틀 뒤까진 국내 증시가 무덤덤하게 반응했지만, 이후 일주일 새 3%가량 떨어졌다. 당시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건강 악화설 등이 가세한 결과였지만 시장에 악영향을 준 것은 분명했다.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인다. 국내외 인플레 우려와 중동 정세 불안, 기준금리 3%대 진입, 글로벌 정보기술(IT) 업황의 부진, 남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 하락 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대지진은 가뜩이나 위축된 투자자들의 행보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 공산이 크다. 특히 외국인들의 팔자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지만 무모하게 맞설 필요는 없다. 때로는 쉬는 것도 훌륭한 투자 전략일 수 있다. 누가 봐도 지금은 증시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조정기다. 핑계 김에 더 편하게 쉬는 것도 나쁠 게 없어 보인다.

글로벌 경기의 회복 흐름과 국내 기업들의 이익 증가 추세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코스피지수는 마지노선인 1900을 잘 지켜내고 있다. 대세상승의 흐름에는 아직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시장은 4월 이후에나 동면에서 벗어나 슬슬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괜찮았던 것으로 확인될 시점이다. 아직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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