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희씨,`남한강에서 북한강까지'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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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강승희(姜丞熹.39.추계예술대 미술학부 교수)씨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또 마련된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 사비나에서 열리는 초대전 `남한강에서 북한강까지'(15-30일)가 그것이다. 강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 북한강에서 >와 < 남한강에서 > 연작 25점을 소개한다. 그의 개인전은 최근 해마다 열리고 있지만 이번 전시는 도시가 아닌 자연풍경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유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강씨는 주로 도시의 새벽풍경을 동판에 담아왔다. 이런 작업은 10년 넘게 지속됐는데, 유독 동판화만을 고집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풍경을 담되 어렴풋이 드러난 길과 어둠의 옷자락이 아직 짙게 드리워져 있는 주변모습을 단순명료하게 묘사했다.

그래서인지 강씨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섬세한 감성과 깊은 정신적 영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마치 동양적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듯한 묘한 착각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은 이른바 아퀴틴트(aquaint) 기법과 에칭(etching) 때문. 아퀴틴트 기법은 수채화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동판화 기법으로, 작품을 대하다 보면 판화라기보다 수묵화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만큼 질감과 밀도감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작품은 강씨가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시킨 것들. 전시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한강의 발원지에서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하류까지를 특유의 섬세함으로 그려냈다. 수면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이를 헤치며 지나는 바람결, 그리고 들릴듯 말듯한 산사의 예불소리가 그렇다. 물론 때는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이다.

강씨는 수평과 수직의 조형질서를 기본으로 산과 대지 사이를 흐르는 강물과 길을 기묘하게 표현했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새벽길과 강은 자연의 세계로 안내하는 통로 구실을 하며 보는 이를 깊은 명상에 빠지게 한다.

평론가 김영호씨는 '전통기법과 장인정신에 기초하면서도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한 강씨는 개념이 모호해져가는 한국의 판화예술에 하나의 지향성을 갖게 한다'고 평가한다.

강씨는 그동안 판화가로는 보기 드물게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국내외에서 누려왔다. 일본 와카야마 비엔날레 2등과 오사카 트리엔날레 수상이 그의 명성을 짐작케 한다. 그는 또 일찌감치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초대전은 2002년 월드컵 행사를 기념해 차례로 마련되는 전시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갤러리 사비나는 「서울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97년 제1부 전시를 가진 데 이어 이번에 두번째 초대전을 열고, 2001년에는 「한국의 고궁」이라는 제목으로 제3부 전시회를 개최한다. 즉 6년에 걸쳐 계속되는 시리즈 형식의 전시 중 한 가운데쯤에서 이번 전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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