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피해 구제, 120일 안에 해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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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은평구 김순희(63·여)씨는 2009년 2월 갑자기 걷기가 힘들 정도로 고관절(엉덩이뼈)이 아파 전문병원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통증이 심해 잠을 자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데서 500만원을 들여 재수술을 했다. 김씨는 1차 수술했던 의사에게 “2차 수술비를 보상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지난해 6월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 가족은 그동안 의사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내년 4월께부터 이런 경우 소송을 하지 않고도 쉽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일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11일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1년여 뒤에 시행된다. 1988년 논의를 시작한 지 23년 만이다.

 그동안 의료 피해자들은 평균 2년2개월 동안 소송을 했다. 착수금과 법원비용으로 600만~700만원이 들고 승소하면 성공보수로 20% 가까이 나간다. 의학 기술이 복잡해지면서 의사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사고가 생길 때가 있어 병원도 애로를 호소했다. 보건복지부·한국소비자원·법원 등에는 매년 2000건이 넘는 의료사고가 접수된다. 2000년 1476건에서 2008년 2079건으로 늘어났다. 불거지지 않은 사고를 감안하면 연간 수천 건이 발생한다.

지금은 포기 또는 소송 두 가지 길밖에 없다. 법안이 23년간 끌어온 이유는 누가 과실을 입증할지, 의사를 처벌할지를 두고 답을 찾지 못해서다. 그러나 새 법안이 시행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법안의 핵심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만들어 여기서 120일 안에 사고 조사와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감정단이 조사해 조정안을 만든다. 이 안에 동의하면 배상금을 받고 분쟁을 끝낸다.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결렬된다. 의사의 과실이 없는 분만 사고는 공공기금에서 보상한다.

 조정이 이뤄지면 의사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생명이 위험하거나 장애·불치병·난치병이 생긴 경우는 처벌받을 수 있다. 분쟁중재원을 이용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현재 법원 소송 청구액이 1억원일 때 인지대·송달료가 45만원인데 이보다 낮게 책정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이번 법률이 의료 사고의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것”이라며 “하지만 어떤 상태가 형사처벌 사유에 해당하는지 혼란이 따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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