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여배우 염사와 성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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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누구나 굳은 결심을 가지고 극계·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결국에 있어서는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것이 조선 극영화계의 비참한 현상이라고 한다. 더욱이 이때까지의 기록을 본다면 여배우들의 변절은 더 한층 심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 사람의 말썽거리가 되며 그 자신들이 점점 타락의 구덩이를 찾아간다.” (‘해외에 빛나는 조선여배우 염사(艶史)’, 『만국부인』, 1932. 10)

 1920~30년대 잡지에는 유명인사의 사생활에 대한 가십 글이 자주 실렸다. 주로 염문(艶聞)과 관련된 스캔들이 많았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성들이었다. 위의 글도 그러한 예 중 하나로 위와 같은 언급에 이어 당대의 몇몇 유명 여배우의 남성편력이 폭로되고 있다. 당시 연예계의 경제적 상황이 워낙 열악해서, 여배우들이 ‘변절’을 하여 배우를 그만두고 문란한 생활을 하며 ‘타락’하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페여급 언파레드’(『별건곤』, 1932. 11) 같은 글에서는 당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여성들 중 많은 수가 한때 여배우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알려준다. 이효석의 소설 ‘장미 병들다’에서는 여배우가 돈을 구하기 위해 성관계를 맺은 남성들이 그녀에게서 성병을 얻는 이야기를 다루었고, 박태원의 소설 ‘여관주인과 여배우’(1937)에서는 주인공이 여관주인으로부터 유랑극단 여배우들의 매춘을 권유받는다.

 이 당시에는 “여배우라면 곧 정조를 판매하는 절조 없는 계집이라는 연상을 하는 게”(이서구, ‘여배우의 정조와 사랑’, 『삼천리』, 1932. 2) 당연시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가십 속의 그녀들을 비하하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런 가십 기사에서는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 즉 돈과 권력으로 그 여배우들을 유린한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비난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스캔들의 책임은 언제나 여성들이 더 혹독하게 추궁당했다.

 2년 전 자살한 한 여배우가 남긴 편지가 뒤늦게 알려져 세상이 들썩이고 있다.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인면수심의 남성들이 31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여기저기에서 ‘성접대’ 리스트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 ‘악마’들의 리스트가 꼭 밝혀져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녀는 ‘성접대’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접대’라는 표현으로 마치 그녀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는 듯 문제를 호도해선 안 된다. 그녀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강제 추행하는 행위’라 정의되는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