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학교안 아이들, 학교밖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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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변하고 있다. 10대들은 학교에서 힙합을 추고 축제를 연다. 학교 방송반·영상반은 더이상 공지사항을 알리는 곳이 아니다. 사회성 짙은 단편영화를 만들고, 축제를 기획하고, 문화 영상물을 제작하는 곳이 됐다.
이러한 학교의 한켠에서는 자유를 찾아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개성과 소질·적성을 찾아 공부만 가르치려는 학교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대학 입학 때까지 중단된 것이 아니라 늘 진행형이라고 항변하는 10대들의 학교 안팎 이야기. [편집자]

“난 이제서야 그 애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단편 영화 “커밍 아웃”(coming out)
은 영파여중 방송반의 작품이다. 영파여중 방송반은 지난해,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학교 내 폭력을 다룬 영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를 만들어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대단한 녀석들’이다. 이들이 올해 선보인 영화 “커밍 아웃”은 성장기 때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10대들의 동성애적 우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드라마. 이 영화는 올해 처음 개최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커밍 아웃”은 ‘99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 행사 기간 중 다른 작품들과 함께 상영되었다.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내 초·중·고교 동아리들이 기획하고 참여한 행사였다. 청소년들이 만든 영화가 상영되는 ‘영상마당’에는 영상에 관심이 높은 청소년들이 객석을 메웠고 직접 학생들을 인솔하고 현장학습을 나온 교사들의 모습도 꽤 눈에 띄었다.

영상반과 방송반은 요즘 중·고교생들 사이에 아주 인기있는 동아리. 역할 또한 크게 변했다. 공지사항을 방송하고 학교 행사 때 방송 시설을 담당하던 10여년 전 모습에서 벗어나 교내 방송, 영상물 제작, 축제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동아리로는 힙합과 같은 춤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춤은 젊음, 비판, 도전, 열정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며 긴장과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다.

“방과후 책상·걸상을 밀어놓고 춤을 추면 기분이 최고”라는 조형주(서울 ㅁ고 1년)
군. 그는 반대하는 부모님 몰래 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도 거의 빠지는 일 없이 연습에 참여하고 모임이 없는 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씩 춤 연습을 한다. 주로 유행하는 동작이나 동아리에서 안무해 낸 동작들이다.

동아리 활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춤은 오늘날 10대들이 열광하는 코드 중 하나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춤을 좋아한다. 청소년 한마당에서도 춤 동아리의 공연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매번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콜라텍을 메우고 음악이 나오면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드는 아이들의 몸짓이나 백댄서가 인기직종으로 떠오른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여의도 야외음악당에는 춤꾼들이 모인다. 대학로로 모여들던 아이들이 언제부터인가 여의도를 찾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춤을 추고 감상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여주고 보며 한 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이다.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지만 이 아이들은 춤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한다. 한 사람이 추는 경우도 있고 여러 명이 원 한가운데서 솜씨를 뽐내는 일도 흔하다. 보는 이가 없어도 이 아이들은 신나게 춤을 춘다.

◇ 학교 밖에서 길을 찾다

광호는 ‘한 수 배우러’ 광주에서 상경한 아이다. 마음처럼 되지 않던 어려운 동작을 해내고 나면 세상을 얻은 것 같다는 광호. 광호는 학교에서는 백댄서가 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학교를 벗어났고 여의도까지 왔다.

연예인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이자 꿈이다. 근래 몇 년 사이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5위 안에 탤런트·가수 등 연예산업 관련 직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사설 연기학원과 기획사에도 10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타나 영웅이 되고 싶어서, 돈을 잘 버니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등 연예인이 되고 싶은 이유도 구체적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찾는 연기학원의 하나인 MTM의 남철영 실장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의 대다수는 연기학원에 다니는 것 외에도 방송국 방청객, 팬 사인회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연예인이나 연예산업 관련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한다.

SK텔레콤 TTL의 모델인 임은경(대원여고 1년)
양이 그런 경우. 탤런트 이병헌의 팬 사인회에 갔다 기획자 눈에 띄어 캐스팅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이지만 임양은 그 전에 이미 여러 모델 에이전시에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울(18)
군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두달 남짓 고등학교에 다니다 그만두었다. 한울이 학교를 떠난 것은 지난해 봄이지만 학교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학교에 가기 싫어 여기저기 아팠을 정도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원주는 중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이 시작됐어요.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지 않는 지역이었거든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했어요. 선생님들은 늘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얘기했구요. 고등학교에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이가 없었어요. 다 구제할 능력도 없고 그럴 만한 사회구조도 아니면서 공부하는 아이들만 잔뜩 만들어 놓는 거쟎아요. 그런 경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한울은 자퇴하고 난 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불안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울이 자퇴하고 난 뒤 처음 한 일은 잠을 푹, 실컷 자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 문학을 좋아하지만 시와 소설만 읽지는 않았다. 흥미를 느끼는 분야의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한달 내내 수학책만 파고든 적도 있다.

한울이는 아직까지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정한 것은 없다. 물리학에 관심이 많고 과학 경시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실력도 뛰어난 편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물리학도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충분히 실험하면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한울이는 요즘 ‘탈학교모임’에 열심히 나간다. 탈학교모임은 학교 밖에서 가능성을 찾아 보는, 삶을 탈(脫)
학교하려는 이들의 모임. 이 모임에는 학교를 박차고 나온 청소년들이 대다수지만 재학생도 참여할 수 있다.

윤희나(19)
양도 탈학교모임을 좋아하고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희나양은 고2 때인 8월 학교를 박차고 나왔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닌데 인권까지 무시당하면서 더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이유”라고 했다.
“두발 검사, 복장 검사 하면서 그러죠. 이게 뭐냐, 단정하게 하고 다녀라. 단정함의 기준이 뭔데요? 우리와 관련된 일들을 결정하는 데 왜 우리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하는지…. 나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어요.”

희나양은 부모님께 자퇴 결심을 말하고 난 뒤 학원 새벽반을 끊고 하이킹을 하는 등 부지런하게 지냈다.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나온 뒤에는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주제에 대해 공부했다.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인권 캠프에 참가했고 탈학교모임이 결성된 뒤에는 자퇴 세미나를 기획·준비하고 치러냈다.

한동안 인터넷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비전21’을 찍느라 무척 바빴고 요즘은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가제가 “자퇴일기”로 잡혀 있는 이 책은 자퇴를 꿈꾸거나 삶을 탈학교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 학교, 그 요지경 속에서 살아남기

지난 10월 KBS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의 교육현장 보고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가 방영된 직후 사이버 공간은 한동안 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네티즌들로 북적거렸다. 게시판에는 ‘우리 학교와 똑같다’ ‘학교는 자폭하라’ ‘학교, 희망은 끝났다’는 절망론에서부터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학교는 필요하다’는 희망론, ‘보도 내용에 문제 있다’는 항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교사들의 반응도 많이 엇갈렸다. “우리 학교와는 차이가 있다”는 교사도 있지만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여자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한 여교사는 “내가 왜 교사를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 반의 절반 이상이 평소에도 옅게 화장을 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물론 실업계 학교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진짜 문제는 아이들의 태도다. 학교 올 때는 화장하지 말라는 말도 우습게 들어 넘기고 수업 도중에 핸드폰을 받는 것도 예사다. 체벌을 싫어하면서도 체벌하지 않는 교사는 무시한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교사의 통제를 벗어났다. 수업 시간에도 교사에게 집중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고 대다수는 잡담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엎드려 자기도 한다. 떠들거나 잘못을 저질러 교실 뒤편에 나가 서 있으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다. 교실 밖으로 쫓겨나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다.

10대 네티즌들의 사이버 토론 공간인 ‘사이버유스’에 올라온 어느 실업계 고등학교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은 인문계 학교와 다를 바 없다. 다른 게 있다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제발 엎어져 자라고 부탁하는 것. 떠들지 말고 차라리 자라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즐기며 이용한다. (중략)
간혹 애들 보고 나가라고 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한번은 수학 선생이 애들보고 떠들려면 나가서 떠들라고 했더니 한 반의 절반이 넘는 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간 적이 있다. 수학 선생은 자기가 선생이 된 것에 새삼 회의를 느끼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루기 힘든 아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교사들에 대한 아이들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박현용(개포교 2년)
군은 “모든 학생이 모든 선생님을 교사 취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수업 시간이 전체적으로 시끄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엎드려 자는 건 아니에요. 물론 어느 시간이건 자는 아이들이 한두명은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전적으로 우리 잘못으로 몰아세우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학생 대다수가 수업에 관심이 없으면 거기에는 선생님 잘못도 있거든요. 아이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선생님은 정해져 있어요. 폭력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한 선생님, 늘 수업 내용이 같은 선생님들이죠. 한번은 우리 반 친구가 잘못을 지적한 선생님 앞에서 불평 섞인 욕설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선생님, 꽤 괜찮은 선생님이었거든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 녀석, 한동안 친구들한테 좋은 소리 못 들었죠.”

교사들이 학생들 때문에 회의를 느낀다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사이버 공간에는 교사답지 못한 교사에게 상처받은 학생들의 항의와 억울한 사연이 많이 올라와 있다.

“시험시간에 답안지를 잘못 마킹해서 바꾸어 달라고 했더니 시험감독 선생이 공부도 못하는 게 답안지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느냐며 아까워 못 주겠다고 윽박질렀다. 내가 그래도 달라고 하자 선생님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따귀를 때렸다. 그것도 세대씩이나. 그 일로 나는 왼쪽 고막이 찢어졌다. 인공 고막 끼우는 게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 친구들은 신고하라고 난리다.”

학생들의 학교 이탈 현상에 전문가들의 진단과 견해는 대동소이하다.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먼 교육 환경, 문제풀이 위주의 상상력을 꺾어 버리는 교과서, 대학은 늘어났지만 가열되기만 하는 입시 위주 교육이 원인이며 청소년들이 겪어 내야 하는 상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많이 변했다. 이제 청소년들은 더이상 참지 않는다. 대진여고에서 영상창작반을 이끌고 있는 김정아 교사는 “요새 아이들은 불만과 욕구를 솔직하고 격렬하게 표현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유분방하며 순간적인 감각을 통해 학습한 세대라 그런지 사고보다 감각이 앞선다. 반응이 즉각적이며 좋고 싫은 것도 분명하다.”

청소년과 기성세대의 차이는 리모컨과 손잡이 채널이 갖는 차이와 비슷하다. 리모컨을 누르며 자란 청소년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등을 돌리고 흥미 또한 쉽게 잃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변화에 주목하지 않고 과거의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근래 몇년 사이 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각양각색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다양한 교육 방식과 접근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서려는 교사들의 모임이 그것이다.

즐거운 수학 시간을 꿈꾸는 수학 교사들의 모임 ‘수학사랑’이나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참교육 영상집단’ ‘전국 교사 동호회’ 등은 우리 교육 현실의 신선한 바람이라 할 만하다.

이들 교사는 “이제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는 진행 방식으로는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과 합의점을 찾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며 아이들에게 자극이 전달되는 방법이 달라지면 교육 방향과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데도 뜻을 같이 한다.

“요새는 갑자기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를 믿지 못하고 떠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말이다.”

올해로 교사 경력 20년인 김혜련(풍문여고)
교사의 말이다. 김교사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증폭되고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우려되는 것도 있다”며 “요새 아이들은 어떻다고 못박아 버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을 일반화시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동시에 위험한 일이다. 일반화시키기에는 그애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또한 일반화의 수위나 범주를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뒤따른다.”

이런 문제들은 청소년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학교 울타리 안에 있지만 탈학교모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남이(17세)
양은 “같은 세대라고 다 말이 잘 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여성문제, 동성애자, 양심수 등 소수 인권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니 학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게 되지요. 그러면 어떤 애들은 왜 그런 걸 신경쓰느냐고 해요. 그렇지만 그애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는 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 말이 안 통하는 것은 같죠. 그냥 우리는 많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해요.”

대안교육 전문 소식지 “민들레” 발행인인 현병호씨 또한 10대를 동일한 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현씨는 “기성세대 안에도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존재하듯 10대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개방적 가치관과 보수적인 가치관, 경쟁 위주의 사회를 혐오하는 아이와 비교적 경쟁에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 모두 우리의 청소년이라는 말이다.

일례로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의 경우 “그런 곳에 간 사람도 잘못이 있다”는 견해와 “앞에서는 막고 뒤에서는 조장하는 어른들은 반성하라”는 의견이 PC 통신 안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학부모들의 마음은 급하기만 한데 전문가들은 섣불리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를 꺼려한다. 아이들이 더 다치기 전에 어서 불을 꺼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병호씨는 “청소년 문제를 어른들이 풀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고 단언한다. 청소년들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은 문제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조언한다.

갓난 아기일지라도 그 가정 안에서 역할이 있고 엄연한 가족의 한 사람인 것처럼 청소년 또한 오늘을 함께 사는 동시대인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그들이 아직 성장 단계에 있고 사회적·제도적으로 약자에 해당하므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대학만 들어가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 참으라고 한다. 그러나 청소년기는 나중에 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마치 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 살기 시작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삶은 늘 진행형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안과 밖에서 다 잘 살 수 있게 지켜봐 주고 삶의 질을 고민하고 높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그래도 희망은 우리 안에

이번 서울 학생동아리 한마당에서 만난 10대들은 모두 밝고 활기찼다. 무엇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선 사람이나 시간을 갖고 조금 더 찾아 보려는 사람을 불문하고 서로 표현하고 존중받으며 기뻐했다.

영파여중 방송반 친구들은 “나는 운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얘기와 느낌이 통하는 친구들, 떡 버티고 서서 지켜봐 주는 선생님, 기꺼이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이해심 많은 부모님을 곁에 두었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어른들의 지원과 이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즐거운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탈학교모임에서 만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11월 중순, 교육 현실을 실감있게 그려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드라마 “학교”도 ‘학교 붕괴’에 대해 다뤘다. 그 이야기는 학교 붕괴라는 주제로 글을 쓰던 주인공이 학교 안에서 희망의 싹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그 속도만큼 우리도 빠르게 변해간다. 오직 학교만이 변하지 않으며 세상과 아이들의 뒤를 힘겹게 쫓아오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권태로움과 지루함을 견뎌내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외롭게 제 갈 길을 찾아간다. 학교는 언제나 이들보다 늦게 도착한다. 언젠가는 우리의 절망보다 먼저 도착한 학교가 어깨를 툭 쳐주며 이렇게 말해 주기를…. 이봐, 여기서 뭐해. 나한테 와. 내가 정말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학교로 통칭되는 교육 문제의 희망은 이미 아이들 안에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학교도 서서히 변해갈 것이다. 이제는 사회와 가정이 변해야 할 차례다. 교육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오윤정 자유기고가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9호 199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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