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안개와 물길’의 화가 이호중 … 떠난 지 100일, 안타까운 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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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호중(1957~2010)은 안개와 수로(水路)를 잘 그린 화가다. 그가 캔버스에 재현한 안개 속에 흐드러진 들꽃과 고요히 흐르는 물길을 보고 동료 화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의 이름과 그림은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알음알음 지인들 사이에 마니아가 늘어난 건 자연을 보듬는 그림의 진실 때문이었다. 그가 그린 ‘소나무와 황토’ (사진)앞에서 사람들은 대지의 품을 느꼈다. 그는 속살 같은 황토를 그렸다. 그의 황토는 살점이 쥐일 듯, 손가락 사이로 살며시 흘러내리는 듯한 그런 붉은 흙이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본능을 좇아 붓을 쥐었던 그는 누가 봐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작품 세계로 학벌과 명성을 뛰어넘으려 했다.

 그 이호중이 지난해 11월 14일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간암 투병 중이던 그는 서울 세검정 화실에 동시에 작업하던 그림을 수십 점 남겨놓고 눈을 감았다. 이호중의 형이자 역시 화가인 이희중(용인대 회화학과 교수)씨는 “그 많은 작품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22일은 이호중이 떠난 지 100일 째 되는 날이었다. 지인들 사이에 흘러나오던 추모전 얘기는 어느새 쑥 들어가 버렸다. 유가족은 탈상을 하고, 세상은 그를 잊는다. 이호중의 풍경 속에는 왜 사람이 없을까. 세검정 화실 문에 붙었던 문패도 언제인지 모르게 떨어졌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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