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81)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단식, 개안수련 5

“그가 왜 혼자 삼층까지 올라갔을까요?”
최순경이 내게 다가와 속삭여 물었다.
“그러게요. 거기 올라갈 일이 없을 텐데…….”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죽은 지 30일에서 45일 정도 경과했다는 검안의 소견이 나왔다. 더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봐야 하는 모양이었다. 이사장은 그러나 부검을 강력히 거부했다. 누가 봐도 추락사한 것으로 보인다면 구태여 부검까지 해서 죽은 이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부검거부의 이유였다.

연락을 받고 온 노과장의 늙은 어머니도 이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기로는 경찰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시체의 훼손이나 누운 자세로 보아 추락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거의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최순경만이 부검을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는데, 파출소에서 나온 젊은 순경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죽은 노과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감겨주었던 일이 비로소 떠올랐다. 그런데도 내가 죽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죽였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남들이 하듯이, 심지어 ‘그는 왜 삼층까지 올라갔지?’ 하고 생각해봤을 정도였다. 경찰들이 의례적인 심문을 했다. 이미 노과장이 실종됐을 때 백주사나 김실장에 의해 반복적으로 받아본 질문이었다.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히 불안하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표정 없이, 못 봤어요, 몰라요,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정서적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역시 김실장 같았다. 그는 틈만 나면 문화궁 안에 들어가 삼층까지 오고가며 생각을 많이 하는 눈치였다. 내게 최순경과 똑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왜 노과장이 삼층에 올라갔을까?”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자네는 문화궁에 들어간 적 없었나?”
“없었습니다. 거기를 뭐하려 들어가겠어요?”
가끔 삼층까지 올라가 멀리 내다보이는 도시의 서쪽지역과 강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던 내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떠올랐다가 꺼졌다. 이미 담배꽁초나 신발자국을 완전히 지웠기 때문에 내 흔적은 그곳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본 사람은 죽은 노과장뿐이었다.
“자네는 겨울 내내 경비실에 있었어!”
김실장이 오금을 박았다.
“문화궁에서 지척이야. 그 동안 시체 썩는 냄새조차 못 맡았다니 말이 돼?”
“날씨 때문에 시체가 썩지 않았다잖아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못한 듯 반문했다. 사건처리의 열쇠는 이사장이 쥐고 있었다. 이사장은 사건을 오래 끌고 싶지 않은 게 확실했다. 자칫해 언론에 보도라도 되고 하면 낙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건축허가절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형사들이 명안진사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싫을 터였다. 이사장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경찰이 현장조사를 끝내고 돌아간 날 저녁엔 유달리 친절한 목소리로 계획에 없던 설법을 하기도 했다.

단식원엔 수련생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악취가 여전히 차 있었다. 이사장은 그러나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노과장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때까지도 ‘패밀리’들만 알고 있었다. 그는 백주사와 달리 빙의령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사장이 그날 설법의 주제로 삼은 것은 이른 바 ‘구선법(九仙法)’이었다. 그는 악취 속에서 사람들에게 ‘구선법’을 가르쳤다. 세 가지를 먼저 용서하고 세 가지를 먼저 은혜롭게 여기고 세 가지를 먼저 잊으라는 가르침이었다. 이사장은 그것을 당신의 ‘구선법’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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