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레스 첫 인사 때 ‘우리 집 오시라’ 초대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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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지금은 집(공관) 없는 신세지만, 조만간 집을 마련하면 한 번 방문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웃으며 ‘나는 공짜 밥 좋아합니다. 불러주면 가겠다’고 대답하시더군요.”

 ‘2010 올해의 외교인’에 뽑힌 김홍락(59·사진) 주 볼리비아 대사는 25일 “폐쇄했던 대사관을 10년 만에 다시 열었으니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주재국 최고위층과 가까워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재외공관장 회의와 기업인 상담을 위해 일시 귀국했다.

 김 대사는 2008년 9월 볼리비아에 부임했다. 1998년 경제위기로 공관이 폐쇄된 지 10년 만이었다. 그는 스페인어 실력이 탁월하다. 20여 년에 걸쳐 닦은 지역 전문성도 뛰어나다. 그 덕에 외교부에서 대표적인 중남미 전문가로 꼽힌다.

 볼리비아는 평균 해발고도 3600m의 초고산지역. 그는 고산병과 싸우며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과의 관계 강화에 힘을 쏟았다. 2009년 3월 열린 공관 개설식에 모랄레스 대통령은 해외출장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을 비롯한 볼리비아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후 두 차례나 대사관저 만찬에 참석해 현지 외교가의 화제가 됐다.

 이런 친분을 바탕으로 지난해 8월 모랄레스 대통령의 방한이 성사됐다. 수교 이래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에 ‘리튬개발 및 산업화’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리튬은 휴대전화나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2차전지의 필수 원료다. 최근 수요가 급증해 나라마다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볼리비아 남부의 우유니 소금호수는 세계 최대의 리튬 매장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원 개발과 인프라 사업 등 국내 기업의 볼리비아에 대한 관심이 최근 매우 높아졌다”며 “지난해에는 투자상담을 요청한 기업이 두 곳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9곳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자원 확보와 관련해 김 대사는 “정부 지원도 중요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내 기업 간 과당경쟁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 협상력을 높이는데 우리는 국내 기업끼리 경쟁하다 협상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 대사가 자원문제 다음으로 최근 역점을 두는 것은 한글 보급이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표기문자가 없는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에게 주말에 직접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우리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다. “반응이 좋아 볼리비아 외교장관이 ‘규모를 더 키우자’고 제안했다”며 “아이마라족은 인구 200만 명 규모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논의해 한글 보급사업 확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13회)에 합격해 1979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주 칠레·멕시코·파나마 대사관 서기관, 외무부 남미과장, 주 애틀란타 영사, 주 에콰도르 참사관, 외교통상부 중남미국 심의관, 주 과테말라 대사 등을 역임했다.

글=염태정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올해의 외교인상=영산재단(이사장 이홍구 전 총리)이 매년 외교 분야에서 우수한 업적을 남긴 외교관과 민간인 1명씩 수여한다. 올해는 김 대사와 ‘칭다오 적십자 한중의료단’(단장 이영남)이 선정됐다. 한중의료단은 칭다오 현지에서의 무의촌 무료 의료봉사활동, 자폐아 교육비 지원 등 광범위한 봉사활동으로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6시30분 서울 태평로 플라자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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