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유대인과 이슬람 자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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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31면

골드먼삭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이다. 유대계 자본의 상징이기도 하다. 골드먼과 삭스라는 독일계 유대인들이 세워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드니 와인버거, 거스 레비,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뿐 아니라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 등 전·현직 리더들이 유대인들이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 유대인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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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가. 골드먼삭스는 이스라엘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인 로버트 맥스웰이 영국에서 일으킨 대형 금융스캔들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유대인 색이 짙은 골드먼삭스의 역사를 뒤져보면 사뭇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눈에 띄곤 한다. 골드먼삭스가 이슬람 자금의 대리인으로 구실한 사례들이다. 골드먼삭스는 80년대 쿠웨이트투자청(KIO)의 서방 대리인으로 구실했다. KIO가 어떤 곳인가. 바로 쿠웨이트 왕실의 자금을 굴리는 곳이다. 이슬람을 경계하는 쪽에서 보면 아주 걱정스러운 곳이다.

실제 KIO는 80년대 중반 이후 오일머니를 씨티 등 서방 은행에 예치하기보다는 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미국과 영국 국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50대 기업 주식을 전략적으로 매집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 등 미국 앵글로색슨계 투자은행들은 이슬람 자금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계심을 의식해 KIO를 대리하기 꺼렸다.

유대계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거리낌 없었다. 수익을 최우선시했다. 골드먼삭스는 KIO의 채권과 주식 매집을 대행했다. 미 금융감독 당국의 눈길을 피해 편법으로 증권을 사들여 쿠웨이트 왕실 금고에 넣어주기도 했다.

골드먼삭스의 수익 제일주의는 영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80년대 후반 국영 석유회사 BP의 민영화(기업공개)가 주가 하락으로 실패할 위기에 몰렸을 때다. 골드먼삭스는 영국이 해외 매각분으로 배정한 BP 주식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에 팔아치웠다. 한때 영국이 중동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때 지렛대로 써먹은 BP가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영국으로선 자존심 상할 노릇이었다. 보수 세력이 반발했다. 하지만 BP 지분 가운데 20% 정도가 이슬람 자본으로 채워지는 일은 막지 못했다. 이후 BP는 그 자본을 잘 활용해 세계 곳곳에서 유전을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였다. 이슬람 투자자들은 BP 주가 상승의 덕을 톡톡히 봤다. 골드먼삭스는 위험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채 수수료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물론 민족인종문명 충돌이 엄존하는 현실 세계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이동을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철없이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슬람 자금을 적극적으로 서방에 끌어들인 골드먼삭스의 전 CEO 존 와인버거(시드니 와인버거의 아들)의 말은 요즘 이슬람 금융법을 놓고 입씨름하는 사람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자본에는 색깔(인종)이나 좌우(정치)가 없고 수익만이 있을 뿐”이라며 “어느 나라 자본이든 수중에 들어온 뒤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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