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남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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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호 10면

아내가 병자면 남편은 죄인이다. 아픈 아내 옆에서 나는 그저 죄스럽다. 아내는 지난가을부터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날 때 많이 힘들어했다. 옷을 입고 벗는 것 역시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팔을 들어올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몇 군데 병원에 다녀오긴 했지만 아내는 처방받은 약은 복용하지 않았다. 아내는 의사보다 인터넷 정보를 더 신뢰한다.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나 스테로이드 약의 부작용 걱정을 하며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약을 안 먹다가 나중에 관절의 변형이 오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어떤 약제로도 완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병은 주로 저소득층 여성이 많이 걸린대”라는 말로 남편의 불타는 콤플렉스에 기름을 끼얹는다.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고 육안으로도 손등 관절의 염증이 확인될 정도가 되자 아내는 종합병원을 가봐야겠다고 한다. 그래서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 대학병원 대기실에서 아픈 아내와 죄스러운 남편이 대기하고 있다.종합병원 대기실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어쩌면 인생이란 이렇게 대기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인생에는 생로병사의 네 고비가 있고 우리는 대기실에서 각 고비를 기다리는 중인데 문득 생과 사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는 늙음과 병뿐이라는 우울한 자각을 한다.

병든 아내는 늙은 남편에게 팔과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한다. 그 모습을 맞은편에 혼자 앉아있는 여자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아, 아주머니 그게 아니랍니다. 저는 오늘 하루 아내의 불평이 듣기 싫어 억지로 따라온 나쁜 남편입니다. 제가 아내 몸을 망친 그 남자랍니다. 다발성 관절염을 특징으로 하는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질환, 류마티스 관절염이 바로 저랍니다.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하는 면역계가 오히려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아내의 몸을 보호해야 하는 보호자면서 오히려 아내를 망가뜨린 가해자인 거죠. 그러니 제발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나는 입을 다물고 말했다.

드디어 아내 차례가 왔다. 보호자는 아내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간다. 젊은 의사가 남편을 한번 쓱 바라본다. “언제부터 아팠느냐”고 의사가 묻자 아내는 “지난가을부터 어깨가 아팠는데 그냥 처음엔 차를 밀다가 근육이 좀 놀란 것이려니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보는 것처럼 심각해졌다”고 대답한다.

젊고 잘생긴 의사는 한번 더 쓰윽 나를 바라본다. 의사가 나를 보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건 힐난을 담은 눈빛이다. 이렇게 병이 진행될 동안 남편이라는 사람은, 보호자라는 작자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했는지 질책하는 눈빛이다.

진료를 마치고 대기하고, 검사하고 또 대기하고, 검사하고 다시 대기하고 그렇게 진료와 검사와 대기를 모두 마치니까 오후 세 시가 훌쩍 넘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아내가 묻는다. “배 안 고파?” 아내가 아프면 남편은 고프다. 아내는 검사 때문에 금식한 것이지만 안 아픈 남편은 허기진다. 젊었을 땐 안 그랬는데 나이 들수록 한 끼 굶는 것도 참을 수 없다. 남편은 대답한다. “이 시점에 배 고프면 그게 인간이야?”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와『대한민국 유부남헌장』『남편생태보고서』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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