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물가 안정을 위한 ‘소는 누가 키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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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두바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혹한과 구제역 영향으로 농축산물 가격도 예년 수준을 훌쩍 넘었다. 생필품 물가가 많이 올라 서민의 생계비 부담이 커졌고 기업도 원가 부담에 아우성이다. 원자재 값이 뛰었는데 제품 값을 변하지 않도록 할 재간은 없다. 경제에 일시적인 주름은 생길지언정 물가 충격에 맞춰 경제주체가 소비나 투자를 바꾸도록 해야 비효율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물가를 쉽게 보면 안 된다. 경제주체가 물가 충격에 과민반응하고 인플레 심리가 흔들리게 되면 개별 가격뿐 아니라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오르기 십상이다. 특히 이러한 기회를 틈타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면 경제는 금방 ‘고물가’의 나쁜 균형에 빠진다. 물가라는 것은 성격이 고약해 여러 개의 균형을 가지고 있다. 원가 부담 때문에 기업이 가격을 경쟁적으로 올리면 다른 물가도 덩달아 오른다. 특히 우리나라는 독과점 시장구조 때문에 가격이 하방경직적이라 한번 오른 물가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정부 물가대책의 골자는 물가 충격이 인플레 심리를 자극해 구조적인 인플레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공급 부문의 물가 불안이 크지만 수요 측면의 압력도 있기 때문에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거시정책을 쓰고 있다. 재정적자를 지난해보다 줄이는 등 재정기조를 긴축하고 있다. 정책금리도 지난 1월을 포함해 세 차례 올랐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곤 하지만 환율도 지난해 말보다 떨어지고 있다. ‘수급’과 ‘심리’ 안정을 위한 미시대책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키고, 할당관세를 통해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기업 원가 부담을 낮추며, 가격 담합을 막고 있다. 구조적으로도 가격정보 공개를 통한 경쟁 촉진, 유통비용 절감, 정유·통신 등 내수 독과점 산업의 시장구조 개선 등 시장친화적인 대책을 쓰고 있다.

 정부의 물가대책을 두고 “구시대적”이라든지 “기업의 팔목을 비튼다”는 볼멘소리도 일부 나온다. 지금 정부가 기업에 대해 물가 차원에서 하는 것은 가격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조사하고 독과점 시장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물가 안정을 위해 협조를 구하고 정부가 지원할 것은 없는지 파악해 대책에 반영하는 정도다. 민간과 의사소통이 보다 정확하고 세련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수긍한다. 현 물가 상황이 기업을 억눌러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며, 시장의 가격결정에 정부가 얼마를 올리라 마라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타당치도 않다는 것쯤은 정부도 안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가격 인상이 일반화하면 물가 안정 기반은 허물어진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가격을 경쟁적으로 올리는데 정부가 물가 관리를 시장에 맡겨두고 뒷짐만 지고 있으면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부의 법상 부여된 권한 행사마저 물가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면 ‘물가 안정’을 위한 소는 도대체 누가 키우나?

 지금은 물가 상황이 어렵고, 특히 서민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비상 시기다. 물가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안정될 수 있다. 실제 많은 기업은 가격을 동결하거나 인상을 최소화하며 원가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소를 키운다면 추운 날씨가 풀리듯 우리 경제가 ‘물가 안정’이라는 좋은 균형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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