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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경제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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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의 기치로 당선돼 취임한 지 3년이 됐다. 대선 공약과 취임 초기 MB노믹스의 정책기조는 ‘747’과 대운하로 상징된 성장론이었으나 국내외적 여건 변화에 따라 ‘안정론’ ‘부양론’ ‘민생론’으로 전환됐다. 그 과정에서 MB노믹스는 형체가 모호해졌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출범 초기에 마련된 국정 철학과 지표를 다시 보니 오래되어 빛 바랜 사진 모습이다.

 정권 초기엔 민심 이반이 쇠고기 파동으로 표출됐고, 최근엔 전세난과 구제역 파동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심 이반의 근본 원인은 이들 개별 사항에 있지 않다. 뜬금없는 실용으로 스스로 정체성에 혼란을 자초하고, ‘강부자’ ‘고소영’ ‘회전문 인사’로 도덕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덧셈의 정치보다 뺄셈의 정치를 함으로써 기대했던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해 민심이 이반됐다. 이러한 정체성·도덕성·지도력에 대해 핵심 인사들은 지금도 그 내용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한 나라의 앞날은 그 구성원의 의식, 구성원 간의 경기규칙, 그리고 제도 등 세 가지에 달려 있다. 우리의 경우 이들 세 가지 모두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문제를 야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은 실종됐고, 결과의 평등이 공정사회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인류를 빈곤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만든 시장경제체제가 문제 있는 체제로 각인되고 있다.

 ‘정치의 장’과 ‘정책의 장’의 연결고리가 이념이다. 정책 논쟁의 근원은 이념 논쟁이며, 이념 논쟁에서 이겨야 정책 논쟁에서 이긴다. 그런데 MB정부는 이념이 모호하며 이념논쟁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묘약이라 제시된 것이 실용주의다. ‘이념을 넘어선 실용’이라는 구호는 매력적으로 보이나 경제정책의 주된 기치가 될 수 없다. 정책에서의 이념의 중요성을 모르고, 이념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정책을 논의하다 보니 정책의 구심점이 없고 상황에 따라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조변석개(朝變夕改)해왔다.

 정부가 돈키호테처럼 해결사로 나서 시장을 대신한다면 정치의 풍요만을 낳을 뿐 경제적 풍요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정치의 풍요는 갈등의 확산을 가져온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의 큰 교훈이다. 위기를 변화와 개혁의 기회로 삼았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부 규모를 줄이고 공공부문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국가가 번창하는 길은 딱 하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활성화, 일자리 창출, 복지 확대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정책과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투자의 활성화는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우리나라로 유인해야 가능하다. 외국 자본과 기술의 국내 유입은 나라 전체가 경제특구가 되면 된다. 잘나가는 나라는 나라 전체가 경제특구인데, 우리는 겨우 몇몇 지역에 특구를 만들어 놓았으며, 그나마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통구와 다름이 없다.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 ‘경제 전문가’라며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면서 너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법 규범과 경제 원리를 존중하는 사람들로 경제팀을 새로 꾸려 전적으로 맡기고, 대통령은 ‘실무자’가 아닌 ‘사회자(president)’ 역할을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의 책임하에 한은 총재와 경제수석이 경제정책 목표의 우선순위와 정책수단을 긴밀히 협의 설정하도록 하고, 대통령은 이들을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지켜주면 된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전 보건복지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