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 2000여 점 소장 … 세계적 큰손 컬렉터 울리 지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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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컬렉터 울리 지그(65·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메이드 인 팝랜드’ 전시(20일 폐막)에 중국 현대미술 작품을 대여했던 그다. 기업인이자 재중 스위스 대사 등을 지낸 그는 1980년대부터 중국 현대미술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약 350여 작가의 2000여 점을 수집한 중국 현대미술의 큰손이다. 반체제 성향의 중국 젊은 작가 1500여 명을 일일이 찾아 다녔다. 그의 소장품을 빌리지 않고는 중국 현대미술 전시를 여는 게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질 정도다.

 그가 이번 전시에 대여한 작품은 왕광이의 ‘마오쩌둥:레드 그리드 No.2’ 등 총 11점. 창살 뒤의 마오 초상처럼 느껴지는 ‘마오 그리드’는 지난해 G20 기간 중 중국대사관 측에서 작품의 정치성에 문제를 제기해 한때 전시가 불발될 뻔하기도 했다.

 18일 만난 그는 “대학 때는 서구미술품을 수집했다. 70년대 말 처음 접한 중국미술은, 생소하고 낯설었다”며 “서구의 시선을 벗고 중국 고유의 예술언어를 찾아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라고 말했다.

 “중국사회가 개방되면서 중국 현대미술도 태동했는데, 누구도 수집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저 맘에 드는 작품만 사들이다가 어느 순간, 개방 이후 중국 시대사의 흐름을 기록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개인 취향이나 투자보다 기록으로서의 컬렉션이죠.”

 중국미술은 2000년대 들어 세계시장에서 도약하고 있다. “80년대엔 100달러 그림이, 90년대는 1000달러, 지금은 100만 달러가 된 격이죠. 중국 사회에 대한 관심, 국가적 파워 등이 중국 미술이 떠오른 주요 배경이겠죠. 또 예술시장은 언제든 새로운 것을 찾고요.”

 그는 최근 자신의 소장품을 중국에 반환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의 현대미술은 곧 중국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구체적 반환 방식은 고심 중이다.

 지그는 또 요즘 정연두·함경아 등 한국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중국 작품과 달리 철저히 제 취향에 따라 모읍니다.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능숙하게 소화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미술품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컬렉터로서 작품 값이 내리니까 되레 행복했다”고 했다. “좋은 컬렉터가 되는 것? 많이 보고 많이 배워야죠. 훌륭한 것을 찾아내는 분별력은 결국 시행착오 속에서 키워지는 것이니까요.”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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