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 교수 “사라져가는 고려인 문학 … 한민족 문학에 포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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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북조선에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다른 나라에 가고 싶어 한다. 그겄은 북조선에서 10년을 일해바야 테레비를 한 대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겄은 한늘에 별다기와 같은 겄이다. 수단이 없으면 어림도 없다. 외국으로 가는 겄은 3~4 단계를 합격해야 되는데 처음에는 시, 군, 당 간부과이다. 여기서 해외 파견 노무자를 고르고 또 고르는데 우선 집안 내력을 본다. 또한 뇌물 없이는 생각도 말어야 한다.’

 북한경제의 실상이 생생하다. 노동력 이탈이 심각하다. 만연한 부패도 엿보인다. 글쓴이는 고려인 작가 리시연. 북한과 러시아간에 맺어진 ‘림업체결’에 따라 극동 지역에 파견된 것으로 보이는 그가 1992년 7월 하바로프스크에서 쓴 수필이다.

 고려인 문학작품을 모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국학자료원)이 출간됐다. 멀게는 1960년대부터 가깝게는 2006년까지 고려인 작가 8명의 시 46편, 단편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 5편 등 모두 57편이 실려 있다.

 문금동의 단편 ‘솔밭관 토벌’은 1920년대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를 소재로 한 것. 1944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리 왜체슬라브의 시 ‘조선의 소나무’ 등은 러시아어로 쓰인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정호웅·홍용희 등 국내 평론가들의 글도 실려 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 문학, 즉 한인들이 이국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쓴 작품의 문학적 의미를 따진다.

 책은 경희대 국문과 김종회(사진) 교수가 엮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국제한인문학회 등이 참여했고,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권영건)이 후원했다. 지난해 6월 경희대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학술대회를 연 뒤 8월 카자흐스탄 현지조사에서 자료를 입수했다. 현지 시인 최석씨 등이 작품 원고를 내놨다.

 김 교수는 “국적·언어 등을 기준으로 민족문학을 구분하던 연구 관행이 최근 바뀌고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도 포괄적으로 한민족 문학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한 두 편 정도 고려인 문학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찾아낸 적은 없었다”며 “종전의 고려인 문학이 생활·풍속 등에 집중된 것에 비해 이번 작품들은 일제시대 항일투쟁, 북한 체제의 실상 등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어로 쓰인 고려인 문학은 점차 사라질 위기다. 고려인 5, 6세까지 내려가면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 김 교수는 “이번 작품들이 사실상 마지막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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