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신작〈와호장룡〉로케 대만 이 안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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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감독이 찍는 영화에 남.북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하고 제작비를 할리우드가 댄다면? 그래서 할리우드의 탄탄한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 극장에서 상영된다면….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고 뿌듯해지는 일이다.

중국, 그곳에선 벌써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만.홍콩.중국 등 '3중국' 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중국에 모여 할리우드의 지원을 받아가며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이런 '3중국 합작' 의 대열에서 메가폰을 잡은 주인공은 대만의 리안(李安.45) 감독. 〈음식남녀〉(94년) 〈결혼피로연〉(94년) 등을 통해 주목받은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센스, 센서빌리티〉(95년) 〈아이스 스톰〉(97년) 〈라이드 위드 더 데블〉(99년)등을 찍었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영화는 정통 무협 서사극 〈와호장룡〉(臥虎藏龍). 〈음식남녀〉〈결혼피로연〉등 가족 드라마에 치중했거나 서구적인 경향이 짙었던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볼 때 이는 꽤나 보폭이 큰 변화다. 배우들도 화려하고 국적도 다양하다.

저우룬파(周潤發). 양쯔충(楊紫瓊). 장쯔이(章子怡). 장전(張震) 등 홍콩.중국.대만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고〈매트릭스〉의 무술지도를 맡았던 홍콩의 무술감독〈리셀웨폰4〉등 할리우드로 진출했던 무술감독' 위안허핑(袁和平) 등도 이 영화에 합류했다.

리안 감독, 그는 왜 갑자기 자신의 시선을 무술영화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일까. 중국 베이징 스튜디오에 지어진〈와호장룡〉의 세트에서 그를 만났다.

- 李감독이 무협서사극을 만든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작들과는 소재나 장르가 완연히 다른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작들과 다르다는 것이 바로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제게 새로운 모험이에요. 나는 주로 가족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죠. 난 더 큰 캔버스를 찾아왔어요. 전쟁.무술, 그리고 로맨틱한 전설을 함께 담은 영화들을 오래전부터 만들고 싶었죠. 무협영화와 소설은 제 어린 시절의 큰 부분을 차지 했거든요. 이제야 그런 기회를 얻은 겁니다."

- 홍콩.중국.대만 등 '3중국' 의 영화인들이 꼭 모여서 작업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우리는 서로 필요했기 때문에 모인 거에요. 그건 우리의 꿈이기도 했죠. 특히 무술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당연히 홍콩 영화인들의 도움이 필요했구요. 그들은 그 방면에 최고잖아요."

-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무협영화지만 드라마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무술은 여기서 인간의 내면적인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드라마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 李감독은 소재나 실제 제작 활동에 있어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감독으로 여겨지는데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개인적인 정체성 자체가 감독에게 '전부' 는 아니에요. 왜 대만의 첼리스트인 요요마가 바흐를 연주하겠습니까.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다양하죠. 거대한 산업의 뒷받침을 받으며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솔직히 매력적인 일이에요. 좀 더 큰 무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솔직히〈아이스 스톰〉을 만드는 일이나, 엠마 톰슨 같은 배우랑〈센스, 센서빌리티〉를 연출한다는 일은 제겐 정말 거부하기 힘든, 해보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 작품을 통해 동서양을 접합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어렵지만 또 즐겁고 만족스러운 면도 있죠. 저는 이 장소 저 장소를 오가며 일하는 게 재미있고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일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요. 하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입니다."

- 동양출신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게 외롭지는 않습니까.

"전 항상 외로워요. 특히 여기(중국)에서 일하는게 더 외로운데요. 지금 촬영이 5개월째인데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어요. 가족들도 여기에 없구요. 어차피 매번 도전이 필요한 영화 만들기는 절 외롭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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