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금 감시 소홀이 빚은 용인시 경전철 재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경기도 용인시 경전철이 가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운행하자니 용인시 재정에 연간 550억원의 적자가 난다. 그렇다고 멈춰 있자니 시행사 측은 하루 1억2000만원의 이자를 허공에 날려야 한다. 1조1000억원짜리 경전철이 애물단지가 돼 그야말로 진퇴유곡(進退維谷)에 처한 것이다.

 이에 재정 부담을 우려한 용인시가 경전철에 대한 준공 승인을 거부하자 외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시행사 측은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할 계획이란다.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용인시로서는 얼마간의 재정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용인 시민들이 뜻하지 않은 세금 폭탄을 떠안게 됐다는 뜻이다.

 이런 재앙(災殃)에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현 시장은 전 시장을, 전 시장은 공무원과 민간 평가위원을 손가락질한다. 모두가 ‘네 탓’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장밋빛으로 시작한 경전철이 가시만 남아 서로 흠집과 생채기만 내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발단은 터무니없는 수요 예측이다. 하루 14만 명이 이용한다더니 실제는 3만 명에도 못 미친다는 거다. 그런데 사업계약서는 개통 이후 30년까지 시행자 측에 최소 운영수익을 보장해 주도록 돼 있다. 따라서 부족한 11만 명분 운임 수입의 상당 부분을 보전해 줘야 한다. 바로 세금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1차적 책임은 용인시, 그리고 사업의 최종 결재권자인 시장에게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점검하거나 걸러내지 못한 시의회의 책임도 크다. 자치단체의 정책과 사업에 타당성이 있는지, 세금 낭비 요소는 없는지 따지는 것이 자치의회의 본분 아닌가. 결과적으로 직무유기한 셈이 아닌가.

 문제는 이런 상황이 용인시에 국한된 게 아니란 점이다. 경전철 사업은 자치단체장의 단골 공약 메뉴다. 당장 의정부시는 4750억원을 들여 내년 6월 개통 예정인 경전철에 대해 사업성 재조사에 나섰다. 용인시와 마찬가지로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적자가 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내년 중 왕십리~중계동을 잇는 동북권과 여의도~서울대, 난곡~보라매공원 구간에 경전철을 착공할 예정이다. 총 사업비는 1조9690억원이다. 전남 순천시는 전남동부권 경전철, 대구 달성군은 대구지하철 연계 경전철이 현 단체장의 공약사업이다. 경기도 역시 수원과 성남 경전철을 구상하고 있다. 모두 나중에 용인시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사업 타당성을 면밀히 재검토하길 바란다.

 세금 낭비는 누구보다 단체장과 공직자 책임이다. 하지만 이를 감시하는 최종 책임자는 주민이다. 용인시의 경우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새는 것을 눈 부릅뜨고 감시하지 않은 시민들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세금이 똑바로 쓰이는지, 이를 제대로 감시하는지가 민주 사회와 선진 시민의 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