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작별인사]

중앙일보

입력

한없는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오늘 저는 대우가족 여러분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대우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가족.친지 여러분.

그동안의 성원에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열정과 노력 그리고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와 배려를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고락을 함께 한 지난 시절을 진실한 정이자 값진 보람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소명처럼 추구했던 창조, 도전, 희생의 여정이 이 순간 못내 가슴에 맺혀옵니다. 대우가 살아온 지난 세월에는 국가와 명예와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항상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웠던 여정은 오늘에 이르러 국가 경제의 짐으로 남게 되었으며 우리의 명예는 날개가 꺾이고 말았습니다.여러분과 함께 했던 꿈과 이상 또한 이제 가눌 수 없는 고독이 되어 제 여생의 반려로 남게 되었습니다.

구조조정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빚어진 경영자원의 동원과 배분에 대한 주의 소홀, 용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던 위기관리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초래된 경영상의 판단오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몸짓조차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대우의 밝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라면 지나온 어두운 과거는 제 스스로 짊어질 생각입니다. 이제는 뜬 구름이 된 제 여생동안 그 모든 것을 면류관 삼아 온 몸으로 아프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험난한 고비를 힘들게 헤쳐오면서 부득이 대우가족 여러분께 한마디 위로나 해명의 말조차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를 변명할 염치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차라리 그간 전하지 못한 많은 사연들을 그대로 제 가슴속에 묻어둔 채, 그 안타까운 심정만 대우가족에 대한 영원한 빚으로 남겨놓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헤어짐을 앞두고 스스로 말을 아끼려 하지만 이미 비워져 공허함이 맴도는 제 가슴속에는 그래도 여러분을 향해 아낄 수 없는 한마디가 너무도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우가족 여러분께 가슴으로부터 배어나오는 절실한 심경을 담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나온 시절 오로지 대의만을 생각하며 여러분께 강조해온 희생의 덕목을 생각하니 그 미안함이 더욱 큰 부담으로 남습니다.

존경하는 대우가족 여러분. 비록 제가 떠나더라도 대우만큼은 우리 경제를 위한 값진 재산이 되어야 합니다. 대우는 여러분의 보람과 긍지가 담긴 소중한 직장입니다. 제가 기억속에 묻히는 이 순간을 계기로 대우와 임직원 여러분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이제 새로운 기업환경이 여러분의 앞날을 보장해주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새로 선임될 유능한 경영진들과 힘을 합쳐 대우를 희망찬회사로 재탄생시켜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우와 모든 대우가족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1999.11
김 우 중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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