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법관이 "법관도 못해먹겠다"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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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법관이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는 부부에게 사형 언도를 내릴 지 말 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부부는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식량을 훔치다 들키자 주인과 그의 손녀를 살해하고 토막내 유기한 혐의로 이달 초 기소됐다. 열린북한방송은 북한의 검찰 소식통을 인용해 이런 사실을 15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설 전인 이달 2일 양강도 혜산시 주변 농촌인 노중리에 사는 젊은 부부가 설 음식을 장만하려 이웃에 사는 김모(60대 여성)씨 집의 돼지를 훔치려 했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김씨에게 발각되자 김씨를 살해하고 지켜보던 김씨의 손녀(15)도 숨지게 했다. 이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 토막 내 마을 뒷산에 묻었다.

다음날 이 마을 인민 반장이 김씨의 집을 방문했다 피투성이가 된 방을 보고 안전원에게 신고했다. 3일 만에 부부는 체포됐다. 이들은 도검찰소를 거쳐 재판에 회부돼 대기중이다.

문제는 부부의 갓난 아기와 3살, 5살 난 3명의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 검찰소는 모유시간에 맞춰 대기실에서 갓난아기의 모유를 수유토록 하고 있지만 건강이 좋지않아 젖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다 3살 5살 된 아이들은 친척들마저 '식량부족'을 이유로 양육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 사건을 접한 모든 법관(보안원, 보위부원, 감사, 판사를 통칭)들이 부부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남편을 주동자로, 아내를 피동자로 해서 남편만 벌을 받도록 이야기를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내가 "더 살고 싶지 않으니 남편과 함께 죽게 해달라"고 청원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자 법관들이 고민에 빠졌다. 법관들은 "피의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죽였겠는가. 또 그들이 도둑질을 하고 싶어 했겠는가. 무고한 농촌사람들이 왜 살인자가 아닌 살인자가 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법관도 못해 먹을 노릇"이라고 한탄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과거에는 법관이라 마음속으로 체제에 의견이 있어도 내색을 안 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체제 비난을 하는 현상들이 많다”며 “법관들의 심리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폐개혁 이후 이런 생계형 살인 범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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