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게임기가 조종하는 가상세계… 〈13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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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이 영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도 세기말의 한 흐름이라고 할 만하다. 올해 선보인 〈매트릭스〉와 〈엑시스텐즈〉, 〈너바다〉 등이 다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엑시스텐즈〉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이 분야의 전문가다.

새 영화 〈13층〉 (The 13th Floor)이 이 흐름에 가세했다. 아무래도 낯선 스타일의 영화다보니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정교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면 발상이 참신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가상현실의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해체가 가능하다는 것. 이 영화도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30년대의 역사가 99년으로 환원됐다가 다시 미래의 어느 날로 날아가 있다. 시공의 벽이 허물어지자 영혼과 육체도 자유로워진다. 이런 넘나들기를 조종하는 게 '가상현실 게임기' 다.

1937년 LA의 한 호텔. 60대 갑부 그리어슨은 바텐더 애시톤에게 편지 한통을 맡긴 뒤 집으로 향한다. 조용히 침대에 누운 그의 눈?번쩍하는 순간 화면은 1999년 LA의 13층 빌딩으로 이동한다.

이런 차원이동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자체가 가상현실임을 풍자한다. 인간 존재의 허무라고 할까. 그런 존재에 대한 불안은 기술문명이 가져다준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상을 예견하는 것 같다.

〈인디펜던스데이〉 〈고질라〉를 제작. 연출한 롤랜드 에머리히가 제작했다. 감독은 독일 출신 조셉 러스낙. 〈뮤직박스〉 〈샤인〉 등으로 잘 알려진 아민 뮐러 스탈 등이 출연한다.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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