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레이만은 한·이집트 수교 ‘비밀 특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마르 술레이만 이집트 부통령은 1995년 한·이집트 수교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의 중동 교역에도 도움을 준 친한파 인사라고 임성준 전 외교안보수석이 10일 본지에 밝혔다.

96∼99년 제 2대 이집트 대사를 지낸 임 전 수석은 “술레이만은 이집트 정보부장을 역임하던 94년 김덕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의 초청으로 비밀리에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을 접견하고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으로 경제발전을 이룬 데 놀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귀국한 뒤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빨리 한국과 수교하는 게 시대 조류에 맞다”고 설득해 이듬해 우리 외교의 숙원이던 이집트와의 수교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임 전 수석은 “술레이만은 재임 당시 5∼6차례의 만남에서 우리의 관심사를 경청하고 도와줬다”며 “98년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친한 이집트에 도움을 청하자, 술레이만이 직접 이종찬 국정원장(당시)과 나를 무바라크 대통령과 지중해 별장에서 만나도록 주선해줬다”고 전했다. 무바라크는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과는 친했으나 김정일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돕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요즘 북한은 어린이들까지 끼니를 굶는 등 나라 상황이 잘못돼가고 있는 것 같다”며 김정일 정권에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무바라크는 네 차례나 방북했다. 그 후 이집트는 약속대로 북한에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으나 북한이 “남북관계는 이집트가 낄 문제가 아니다”고 일축한 것으로 안다고 임 전 수석은 전했다.

 임 전 수석은 “98년 대우가 리비아에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몰렸을 때도 술레이만이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 및 본인과 무바라크의 만남을 주선해줬다”고 전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유일하게 친분이 두터운 아랍권 지도자가 무바라크임을 고려한 술레이만의 배려였다는 것이다. 두 사람을 만난 무바라크는 배석한 술레이만에게 “즉시 카다피 원수를 만나 일을 해결해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임 전 수석은 “술레이만은 전통적인 친북 국가 이집트의 고관임에도 한국의 중요성을 꿰뚫고 수교를 주도할 만큼 합리적인 인물”이라며 “그가 이집트의 권력이양 지도자로 떠오른 건 이런 자질을 국민과 국제사회가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