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집나가려 했더니 아빠가 먼저 나간 건 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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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불량 가족 레시피
손현주 지음, 문학동네
200쪽, 9500원

“절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이건 내가 십칠 년간 세상을 겪으면서 깨달은 진리다.” “재능은 우리 집에서 불필요한 개인기일 수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 고1 소녀 여울이는 콩가루 집안 덕에 세상을 좀 빨리 알았다. 팔순 넘긴 나이에 집안일 치다꺼리 하느라 따발총 같은 잔소리를 달고 다니는 할매, 채권추심 하청 사업이 점점 기울자 가족들에게 무임금 노동을 시키는 아빠, 엄마가 각기 다른 오빠와 언니, 평생 주식 하다 뇌가 고장난 뇌경색 삼촌이 한 집에 산다. 엄마들은 모두 자식 던져놓고 도망갔다.

 잔소리와 욕지거리와 폭력, 불신과 경멸이 난무하는 이 집안에서도 여울이가 차지하는 자리는 밑바닥이다. 오빠와 언니는 그나마 아빠와 결혼한 엄마들의 자식이지만, 여울이는 아빠가 나이트클럽 댄서와 사고 쳐 낳은 ‘혼외자’라서다. 할매에겐 “송장 칠 나이에 똥 기저귀 빨게 한 년”이란 욕을 듣는다. 여울이는 “나는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우리 가족의 후진적 시스템의 희생물이 되었다”고 푸념한다.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궁리만 하던 여울이의 탈출구는 코스튬플레이다. 없는 돈 아끼고, 아빠 주머니를 털어 애니메이션 ‘슈렉’의 피오나 공주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꿈꿔왔던 피오나 공주의 로맨스는 생각처럼 평탄치 않다. 그 와중에 언니, 삼촌, 오빠가 줄줄이 집을 나가버린다. 급기야 아빠까지. 가장 먼저 집을 나가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 여겼는데 말이다. 그토록 벗어나고팠던 가족이건만, 막상 빈 집에 남고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동안 관심 갖지 않았던 다른 가족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가족을 기다리면서 집을 지키는 처지가 되었지만, 여울이는 이 새로운 위기로 인해 훌쩍 성장한다.

 집 나갈 궁리해 본, 목숨 버릴 생각도 해 본 청소년들이 한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로 무장한 채 자신을 지켜나가는 이 씩씩한 소녀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얻도록. 제 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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