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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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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 기 택
시인

버스나 전철을 타면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때 많은 승객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던 스포츠신문이나 무가지는 이제 스마트폰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를 휴대전화에 옮겨놓으면서도 손가락으로 책장 넘기는 것 같은 아날로그의 느낌을 살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구형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태껏 망설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창밖을 보며 쉬는 시간을 스마트폰에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다. 걷거나 버스를 타면 마음이 쉬게 되고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승용차는 세워두고 버스나 전철을 탄다. 운전을 하면 속도 때문에 한눈 팔 겨를이 없고 위험을 경계하느라 마음도 쉬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쓰는 것도 운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빠르고 많은 정보 때문에 눈과 귀와 엄지손가락과 머리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자투리 시간이 나기만 하면 나도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읽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바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쉬는 시간을 잘 참지 못했다. 쉬는 시간은 편안한 시간이 아니라 지루한 시간이 되었다. 휴식은 쓸모없는 시간, 버려지는 시간인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고 쓸모 있는 것들로 빽빽하게 채우려고 했다.

 이 쓸모없는 것 같은 시간이 바로 창조적인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나는 직장생활과 시 쓰기를 거의 병행해 왔다. 늘 글 쓸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버스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좋은 시상이 떠오르곤 했다. 펜과 메모지가 없어서 아까운 시구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운전하는 걸 피하고, 버스나 전철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은 상상하고 꿈꾸는 풍요한 시간이 되곤 했다.

 거리나 전철 안의 소음과 어수선함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길 위에 있을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내가 움직이는 데에 따라 움직인다. 길은 활기차다. 실내가 막히고 정지된 공간이라면 길은 열리고 움직이는 공간이다. 길은 이 활기로 내면을 자극하고 깨운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사람이 더 활동적인 순간은 없으며, 고독 속에서만큼이나 혼자가 아닌 순간도 없다”고 했다. 휴식과 방심은 비생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순간에 내면은 잠시라도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때에 억압돼 있던 창조적인 사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만히 풀려나와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유익한 정보나 생산적인 일로 채우려고 한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이라도 비워야 머리와 마음에 숨 쉴 틈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창조적인 생각과 상상이 활발해지도록 나에게 배려하는 것이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채우려고만 한다면, 내면에서 활동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무한한 잠재력은 자기도 모르게 질식되거나 위축될 수 있을 것이다.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