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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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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스포츠에서 승부 조작의 가능성을 통계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이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이다. 그는 『괴짜경제학(Freakonomics)』에서 일본 스모를 분석했다. 1989년 1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스모 선수 281명이 벌인 3만2000건의 시합에 관한 데이터를 추려냈다. 스모 선수의 경기에 부정한 거래가 오갔을 개연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모는 우리의 씨름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가 속한 마쿠우치(幕內)를 정점으로 주료(十兩)를 포함한 상위 리그와 그 밑의 하위 리그로 나뉜다. 주료 안에 들어야 월급도 받고 ‘인간답게’ 산다. 그 이하 품계의 선수는 월급 한푼 없이 허드렛일로 보낸다. 한 대회에서 15경기 중 8승 이상을 거둬야 승격된다. 레빗은 7승7패 전적의 선수들이 8승을 위해 벌인 마지막 경기를 주목했다. 이들은 8승6패 선수, 9승5패 선수와 겨뤘을 때 각각 80%와 73.4%의 승률을 기록했다. 평소 50%에 불과한 승률이 80%대로 치솟은 배경에는 일부러 져줬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돈이든, 다음 번에 져주기로 했든 보상의 약속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를 ‘인센티브의 유혹’이라고 했다.

 레빗의 주장이 스모계에서 실제로 확인돼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선수들이 돈을 주고받으며 승패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일본의 국기(國技)인 스모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데 일본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인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스모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한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경기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란 전제조건이 충족될 때 그렇다. 조작된 승부는 거짓 환희와 감동에 빠뜨리는 배신이자 죄악이다. 하지만 일부러 져주거나, 심판 또는 상대 선수를 매수하는 승부 조작은 약방의 감초처럼 현실 속에선 종종 벌어진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쇼트트랙에서 국가대표 선발을 둘러싸고 ‘짬짜미 승부’가 드러났고, ‘e스포츠’는 프로게이머들의 승부 조작 추문으로 얼룩졌다. 축구와 야구에서도 잡음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조작의 유혹이 운동선수에게만 있겠는가. 사회생활에서도 순위는 중요하다. 추락이냐 상승이냐의 갈림길에서 부정한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온다. 순간의 치명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본인도, 조직도 다 망할 수 있다는 걸 스모 파문은 보여준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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