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 연주자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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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Gary Moore·사진)가 6일(현지 시간) 오전 사망했다. 58세.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날 “게리 무어가 스페인 코스타 델 솔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무어의 사망설은 이날 오전부터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매니저 애덤 파슨스이 영국 BBC에 “게리 무어가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국의 대중지 더선(The Sun)은 병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무어가) 만취 상태였다”고 전했지만,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게리 무어는 195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고, 69년 17세 나이로 아일랜드 록밴드 ‘스키드 로우(Skid Row)’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이후 하드록 밴드 ‘씬 리지(Thin Lizzy)’ ‘콜로세움 II(Colosseum II)’ 등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았지만, 블루스 음악으로 관심이 기울면서 79년부터 30여 년간 솔로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활동했다.

 그는 블루스 연주의 전설로 통한다. 블루스의 거장 비비 킹·알버트 콜린스와 함께 한 앨범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와 ‘블루스 얼라이브(Blues Alive)’ 등에서 블루스의 정수를 선보였다. 그의 기타는 흐느끼듯 이어지는 사운드가 특징적이다. 대표곡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엠티 룸(Empty Rooms)’ 등 대다수 곡이 울음 섞인 기타 선율로 문을 열고 닫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타를 연주하는 사나이’이란 별명도 붙었다. 그는 평소 “블루스는 인생의 해석”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애잔한 기타 선율은 평화를 갈구하는 외침이기도 했다. 83년 당시 구(舊) 소련 전투기에 의해 KAL기가 격추된 사건이 발생하자 ‘머더 인 더 스카이스(Murder in the Skies)’란 곡을 발표했다. 이 곡에서 그는 ‘하늘의 살인자가 경고도 없이 다가왔다(Murder in the skies came without a warning)’라며 소련 측에 직격탄을 날려 한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심장병을 앓았던 그는 장시간 비행에 부담을 느끼곤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월이 돼서야 첫 내한 공연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천안함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며 ‘스틸 갓 더 블루스’를 연주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그의 기타는 목놓아 울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느닷없는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당신이 차지했던 내 마음엔 빈 공간만 남아 있네(Here in my heart there’s an empty space where you used to be)….”

 한편 케이블·위성 채널 MBC라이프는 9일 밤 11시 ‘수요예술무대’에서 게리 무어 추모 특집방송을 내보낸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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