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 미묘한 적과의 동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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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와 애플의 경쟁은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두 회사는 PC·MP3플레이어 등 일부 제품에서만 충돌했다. 둘은 오히려 ‘공동 시장 개척자’나 다름없었다. 특히 일부 제품의 경쟁도 지금처럼 전면전이진 않았다. 수요층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Sorry Apple? | 삼성·애플의 관계 지형도
삼성-애플 제품에선 경쟁, 부품에선 공생 … 애증관계 이어질 듯

두 회사의 경쟁은 그러나 세계 IT(정보기술)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가 예전만큼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애플의 독주를 상대할 만한 제품을 내놓은 회사가 삼성을 빼곤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애플을 만든 일등공신인 아이팟은 초기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저장매체로 썼다. 음악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지만 부피가 큰 HDD 때문에 디자인과 성능에 한계가 있었다. 그때 삼성전자를 만났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면 아이팟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5년 9월 애플은 삼성의 낸드플래시를 쓴 MP3플레이어 ‘아이팟 나노’를 내놨고 단숨에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던 황창규(현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사장이 스티브 잡스 CEO를 만나 협상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대형 고객이 됐다. 삼성전자의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2010년 상반기에만 2조3209억원어치의 제품을 사갔다. 삼성의 2010년 상반기 매출액 가운데 3.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삼성전자의 가장 큰 고객은 LCD 패널, D램, 낸드플래시 등을 구매하는 소니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메모리와 모바일 프로세서, D램 메모리 외에도 배터리 등 다른 계열사까지 확대하면 삼성과 애플의 공생관계는 더욱 밀접해진다.

삼성과 애플의 우호적 관계는 그러나 복잡 미묘하다. 반도체 부문에선 고객사인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며 휴대전화 시장 경쟁자로 부상하면서부터 전선(戰線)이 형성됐다. PC나 MP3플레이어와 달리 휴대전화는 삼성전자의 핵심 캐시카우였으니 충격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삼성 부품으로 아이폰이란 혁신적 스마트폰을 개발한 애플은 덩치 경쟁을 벌이던 노키아, 삼성전자, LG전자 등 선발 주자를 모조리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시장의 룰을 확 바꿔놨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오너 체제가 전환됐고, 세계 1위 휴대전화 기업인 노키아 역시 CEO가 바뀌는 등 큰 파장을 불러왔다.

삼성과 애플의 전선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래를 좌우할 핵심 분야에서의 경쟁이 두드러진다. 당장 스마트폰(아이폰과 갤럭시S), 태블릿PC(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에서 부닥치고 있다. 애플은 TV 시장 진출도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론 세계 가전시장을 놓고 일전을 벌일지 모른다.

삼성과 애플의 충돌은 세계시장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그 폭은 더 넓고 정도 또한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두 회사의 경쟁에는 분명한 시너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디자인 능력과 혁신적 UI(유저 인터페이스)를 펼쳐나갈 수 있는 하드웨어를 제공하고, 애플은 삼성의 부품을 구매할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새로운 시장 창출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삼성이 담당하는 한, 그래서 시너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삼성과 애플의 이런 복잡한 애증관계는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윤건일 전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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