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에 담아낸 우주의 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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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이상찬(51)씨는 '늦깎이'다. 남보다 15년이나 늦은 나이인 서른 네살에 미대에 입학해 6년 만에 학교를 마친 만학도인데다 중앙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화명(畵名)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것도 마흔살에 접어들어서였다.

또한 그는 '느림보'다. 별 진전없는 엇비슷한 작품들을 가지고 해가 바뀌기 무섭게 개인전을 여는 요즘 세태와 다르게 7~8년 뜸을 들이는 것은 예사다.

소설가가 오랜 칩거 끝에 회심의 신작을 내놓듯, 그래서 독자들에게 이전과 달라진 좀더 곰삭은 내면세계를 선물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가 오는 17~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덕원미술관에서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근원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다룬 '이기화물도(理氣化物圖)' 연작으로 8년만에 네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일본 나고야대 유학 시절 처음 접하게 된 석채화는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돌가루 특유의 질감이 던지는 세련됨으로 그를 사로잡았다. "흔히 석채화는 일본의 것으로 알고 있고 저도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 배우게 됐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시도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흑.백.황.녹.적 오방색(五方色) 을 사용해 일본적 특성보다는 우리 민화의 뿌리에 닿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순(純) 색의 사용은 다소 어렵게 들리는 '이기화물도'라는 제목과 무관치 않다. " '이기화물도'는 우주 만물의 이치를 한번 그림에 담아보겠다는 욕심에서 시작했지요. 좌청룡.우백호.북현무.남주작, 그리고 중앙을 상징하는 다섯가지 색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만물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기본 원리를 짚어본다'는 뜻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그의 시도가 형식적으로는 추상을, 내용적으로는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오방색을 그대로 사용하면 자칫 촌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어요. 돌가루 자체가 반짝거리는 데다 색이 워낙 강렬해서죠. 먹을 함께 쓰는 것은 강렬함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려는 궁리 끝에 나온 겁니다."

움푹움푹 패어있는 요철(凹凸)의 화면이 목판화처럼 드라이한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꽃과 새.사슴 등 '살아있는 것'의 이미지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요철의 표면은 곱게 빻은 돌가루를 화면에 흩뿌린 뒤 갖가지 모양으로 오려낸 스티로폼으로 찍어 만든 것이다. 그는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02-723-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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