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코리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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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29면

각자 따로 노는 개인주의, 한데 뭉치기 좋아하는 집단주의. 어느 쪽이 경제성장에 유리할까. 지도자 아래 똘똘 뭉쳐 경제개발에 성공한 우리의 경험상 집단주의가 나아 보이긴 한다. 일본도 그랬고, 지금의 중국도 그렇다. 반면 산업화를 먼저 이룬 선진국들을 보면 생각이 흔들린다. 풍요로운 나라일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나.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이에 대한 ‘정답’을 통계와 수식(數式)으로 찾은 사람이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유리 고로드니첸코와 제라드 롤랜드 교수다. 두 사람이 지난해 공동 발표한 논문은 문화와 성장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복잡한 수식은 제쳐놓고 결론만 말하면 이렇다.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1인당 국민소득과 생산성이 높고, 특허 보유건수도 많다는 것이다. 집단주의가 일정한 발전단계에선 효율적일 수 있어도 긴 안목에선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개인주의 예찬론이라 할 정도다.

“개인주의는 자유로운 발상을 북돋워 기술혁신, 창조적 발견, 예술적 실험에 유리하다. 반면 집단주의는 조직의 단합과 공동목표 달성엔 효율적이지만, 개인이 튀는 걸 억누른다.”
그럼 어떤 나라가 얼마만큼 개인주의 성향을 지니는 걸까. 이에 대해선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기어트 호프스테드가 자신의 홈페이지(www.geert-hofstede.com)에 권위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같은 잣대로 세계 56개 지역에서 의식조사를 해 지표로 표시했다. 100에 가까울수록 개인주의적이고, 1에 가까울수록 집단주의적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가장 강하다고 꼽힌 나라는 미국(91)이다. 가장 집단주의적인 나라는 과테말라(6)다. 한국(북한 제외) 점수는 18이다. 아시아 평균치 24에 못 미친다. 중국은 20, 일본은 46이다. 우리는 아시아에서도 비교적 강한 집단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고로드니첸코와 롤랜드에 따르자면 이는 경제성장에 불리한 요소다.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불편한 결과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이후의 한국의 높은 성장률은 어찌 설명할 건가. 두 교수는 한두 해의 기록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장기 데이터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개인주의가 성장을 촉진하기보다, 성장이 결과적으로 개인주의를 키우는 건 아닐까. 살림에 기름기가 돌면 자연스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지 않나. 그러나 두 교수는 이게 통계적으론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창의적 혁신엔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가 유리하다는 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문화를 바꿔야 하는가. 참 어려운 일이다. 다만 문화도 절대불변은 아닐 터. 지금도 우리의 문화는 조금씩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지 않나. 획일적인 집단결속보다 각 분야의 다양성이 중시되는 추세를 보면 그렇다.

사실 그동안 우리가 자랑스레 내세운 ‘다이내믹 코리아’엔 왠지 신흥국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젠 ‘버라이어티(다양성) 코리아’에도 신경 쓸 때가 됐다. 성숙한 선진국이 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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