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사과 또 사과 … “이제 사과가 지겹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김승현
정치부문 기자

“보온병, 자연산을 잊을 만하니까, 또….”

 27일 만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전 안상수 대표가 저지른 실수 때문이었다. 안 대표는 “광주를 껴안아야 한다”며 찾은 국립 5·18 민주 묘역에서 묘지의 상석(床石)을 밟는 결례를 범했다. 이 의원은 “안 대표가 운이 없는 건지, 주의력이 없는 건지…”라며 안타까워했다. 한 당직자는 “굿이라도 해야 하나”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안 대표의 잦은 실수 때문에 당이 풍비박산(風飛雹散) 났다”고도 했다. 사무처 관계자는 “이제 사과가 지겹다”며 짜증을 냈다.

 한나라당의 ‘투톱’인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가 최근 사과를 연발하고 있다. 안 대표는 23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찬을 한 자리에서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부른 당 지도부의 ‘정동기 부적격 판정’ 파문에 대해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상석 결례 이후에도 안 대표는 “이유를 막론하고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도 최근 이틀 연속 사과를 했다. 지난 23일 당·정·청의 안가(安家·안전가옥) 회동 사실을 숨기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과 주고받았던 개헌 얘기를 전혀 없었던 일로 잡아떼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24일 그는 출입기자들에게 “나는 거짓말 안 한다”고까지 강조하며 ‘결백’을 강조했지만 이튿날(25일) 오전 씁쓸한 표정으로 “원론적인 얘기였고, 화장실에도 자주 가서 그런 발언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사과 기자간담회를 해야 했다. 이 때문에 김 원내대표는 주변에서 ‘양치기 소년’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여당을 이끄는 수장들의 수난에 당직자들은 기운이 빠진다고 토로한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될까. 여당의 한 관계자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 무상복지,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잇따른 쟁점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인 당 지도부가 당내 논란을 애써 감추거나, 실수를 재빠르게 만회하려는 식의 대응을 하다가 오히려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앞에 가면 자꾸 작아지는 ‘고개 숙인 남자’(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라는 야당의 조롱 섞인 논평에 이렇다 할 반박을 못했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전투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고개 숙인 전사’들만 남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당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승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