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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카피라이터 전우영이 보여준 긍정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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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

기자에겐 냉철한 관망자적 시각이 필수다. 기자가 흥분하면 기사에 감정이 실리고, 객관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모두가 선망하는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성공한 전우영(24)씨를 인터뷰(본지 1월 27일자 2면·사진)하면서 필자는 거리감과 냉철함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자연스레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기자의 눈물샘을 자극한 대목은 전씨의 학창시절 축구시합 이야기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급우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그에게 절대 공을 패스하지 않았다. 그는 공을 잡으면 금방 빼앗겼다. 그런데 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급우들이 공을 뺏긴 그를 욕하지 않고, 그에게 공을 패스한 다른 급우를 욕한다는 점이었다.

 전씨는 중학교 1학년 때 해외 근무를 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 파리로 옮겼다. 그러곤 축구시합에서 달라진 점에 놀랐다고 했다. 그에게 누군가 공을 패스했다. 뺏어가게 놔두니 같은 팀 급우들이 전씨에게 삿대질까지 하면서 “공을 왜 열심히 안 지키느냐”고 욕을 했다. 급우들은 그가 골을 넣을 때까지 3일간 그에게 계속 패스를 해줬다. 골키퍼를 제친 뒤 그에게 공을 패스해 결국 골을 넣게 어시스트해 준 급우와는 지금도 수시로 연락을 하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지금의 전씨가 있게 된 데에는 이 급우들처럼 조금은 다른 그를 격려하고 그가 능력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1등을 할 필요는 없다. 뒤에서 씹히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는 전씨 부모의 교육도 한몫했다.

 대형 광고기획사인 이노션이 신입 카피라이터 세 명 중 한 명으로 그를 채용하기로 한 결단은 또 어떤가. 이노션 인사팀은 “인터뷰해 보시니 아시겠죠”라며 “그의 채용은 이노션과 전씨에게 모두 윈-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창의력을 강조하면서도 화려한 이력을 갖춘 이들을 선호하는 요즘 기업들에 귀감이 될 만하다. 미국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했다는 한 독자는 “크리에이티브를 중시하는 대형 광고기획사에서 전씨를 채용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일”이라는 e-메일을 보내왔다. 창의력과 튀는 아이디어는 남들과 조금 다름을 받아줄 수 있는 시도에서 나온다.

 전씨의 경험과 감성이 소비자를 감동하게 하는 광고 카피로 태어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빈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전씨의 성공담이 한 청년의 얘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앞으로도 제2, 제3의 전우영이 되길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전우영씨 파이팅!

최지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