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골프 비빔밥 <4> 눈감고 공을 쳐보자, 헤드 스피드가 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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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골프를 하면서 눈(目)에 많이 속는다. 코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트릭에 착각이 일어나서 속는다. 먼 걸 가깝다 생각하고, 가까운 걸 멀다고 본다. 타이거 우즈도 겁낼 장애물을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 반대로 주눅이 든다. 다 코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덫에 눈이 끌려가면서 속는 경우다. 오죽하면 내가 운영하는 마음골프학교에 ‘눈(目)에 속지 말자’라는 구호를 써 붙여 놓았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보도 아닌데 그토록 자주 속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과 인식의 문제’라는 철학적인 주제의 연장선에 있다.

골프공은 무게가 42g밖에 안 되는 딱딱한 물건이다. 정지 상태의 그것을 만지고 느껴보면 ‘짱돌’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인식은 정지 상태의 골프공이라는 대상이 갖는 물성일 뿐이다. 우리는 골프라는 운동을 하면서 정지된 상태의 골프공이라는 물건을 만나는 일은 없다. 스윙이라는 운동의 과정에서 골프공을 만난다. 그것도 대단히 빠른 고속의 운동상황에서 만난다. 고속 운동에서의 공과 나와의 만남!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과 클럽의 만남은 정지되거나 혹은 저속운동에서의 물성과는 전혀 다른 물성을 띠게 된다. 드라이버를 예로 들어보면 정지 상태의 드라이버는 불과 300g 내외의 물건이지만 고속 운동 상황 특히 임팩트 존에 이르러서는 무게는 무려 100㎏에 가까워지고 파괴력은 1t에 가까운 물건이 된다. 그런 흉기와 마주하는 골프공! 무게야 여전하겠지만 1t의 파괴력과 만나는 순간 말캉말캉한 연식 정구공 혹은 찐빵이 된다. 고속 카메라로 임팩트 장면을 찍어놓은 것을 보면 ‘저게 골프공 맞나’ 싶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골프공의 물성은 전혀 없고, 티타늄으로 만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드라이버 헤드의 물성도 사라지고 없다.

42g의 골프공은 휘두르는 드라이버를 만나는 순간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된다. 허공이다.

허공이라는 것이 실상인데 우리의 의식은 정지 상태에서의 인식이 남아서 여전히 ‘짱돌’로 이해하고 있고 그 결과 헤드 스피드를 늦추는 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허상에 속은 것이고 눈에 속은 것이다.

실험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빈 스윙을 몇 번 하게 한 다음 티 위에 공을 올려놓은 뒤 눈을 감고 휘두르라고 한다. 휘두르는 동안 공을 치울 것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휘두르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몇 번은 약속대로 공을 치워준다. 그러다가 상호 신뢰가 쌓이고, 드라이버 헤드의 궤도가 티를 살짝 스치는 정도의 일관성이 확보됐다 싶을 때 공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둔다. 휙~, 깡!

선생도 학생도 놀란다. 거리가 나지 않는다던 해묵은 고민이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다.

날아가는 공은 또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성으로 다시 한번 변신한다. 총알이다. 42g의 색(色)이 1t이라는 색(色)을 만나면서 순간 허공(空)이 되었다가, 이별을 하면서는 또 전혀 다른 색(色)이 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말든, 골프는 그런 기적 같은 순간, 그런 깨달음의 계기들을 담고 있다. 눈감고 공을 많이 쳐보자. 프로들에게도 권하는 좋은 연습 방법이다. 스윙이 시원해지고 거리도 는다.

마음골프학교(maumgolf.com)에서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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