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P 의뢰 보고서] IMF 처방후 빈곤층 두배이상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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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받아들인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오히려 '빈곤고착화' '빈곤세습화' 를 촉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리해고→비용절감→경제성장→빈곤해결' 이라는 정부.국제금융기구의 기본대책이 오히려 빈곤문제를 악화시킨 직접원인이란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참여연대를 통해 정건화(鄭建和.한신대 경제학)교수 등 국내 연구진 5명에 맡겨 실시한 '외환위기후 한국의 빈곤실태와 빈곤감시시스템'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금융기구의 프로그램에 따른 외환위기 극복방식이 빈곤문제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실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가 인용한 세계은행의 '빈곤경향' 자료에 따르면 이른바 '자기방식대로의' 구조조정을 실시한 태국.인도네시아는 전체인구중 빈곤층의 비율이 각각 97년 11.4%.11.0%에서 98년 12.9%.19.9%로 소폭 늘어난 반면 IMF 프로그램을 따른 한국은 8.6%에서 19.2%로 두배 이상 급증, 5명중 1명이 빈곤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보고서는 "세계은행이 한국의 빈곤선으로 규정한 1일 4달러 수입(월 14만8천8백원)은 정부가 현재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하고 있는 월 16만2천원보다 적어 한국의 물가여건 등을 감안한 실제 빈곤층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고 지적했다.

또 연구진이 통계청의 도시가계조사 원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97년 이후 계속 증가한 한국 빈곤층의 비율은 99년 18.8%를 기록,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빈곤인구가 1천2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소득층(상위 20%)의 소득은 96년을 100으로 가정할 경우 97년 120, 98년 127, 99년 132로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승, 저소득층(하위 20%)의 소득이 99년 현재 고소득층의 17.4% 수준에 그치는 등 빈부격차가 심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비의 경우 전체적으로는 IMF체제 이후에도 늘었지만 빈곤층은 98년의 교육비 지출이 97년의 76.7%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자칫 교육기회의 감소로 인해 빈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위험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와 함께 지난 3월을 기점으로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비율(각각 33.1%와 17.4%)이 처음으로 상용직 근로자(49.5%)를 넘어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서구처럼 불완전고용이 확대될 위험성도 지적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노대명(魯大明)정치학 박사는 "국제금융기구들이 한국에 권유했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오히려 빈곤을 심화시켰다" 며 "이번 연구를 통해 경제성장이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님이 드러났다" 고 말했다.

한편 유엔개발계획은 10일 서울대에서 열린 보고서 주제발표 및 토론내용을 일부 첨가해 공식문건으로 인쇄, 이르면 다음달중 세계 각국에 배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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