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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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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일섭
경영학박사·안진회계법인 회장·유한학원 이사장

2000년 파리대학의 물리학자 장필립 부쇼와 마르크 메자르는 부의 압축과 관련된 흥미 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컴퓨터에 1000명으로 구성된 가상인간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들 모두에게 동일한 거래와 투자의 룰을 부여한 뒤 무작위로 부를 분배하고 각자 거래와 투자를 하도록 하는 모델을 장기간 가동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는 것으로 끝났다. 거래와 투자의 룰과 비중을 다양하게 조정해도 결과는 항상 같았다. 우리가 20 대 80의 법칙으로 잘 알고 있는 파레토의 법칙이 언제나 작용한 것이다.

 단순화된 컴퓨터 모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의 결과가 시사하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부의 분배 불평등이 돈 버는 재능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부의 쏠림 현상이 문화나 행동, 또는 지능을 비롯한 개인적인 특징이나 제도적인 모순 때문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조직적인 특성으로 나타나며 이는 경제생활의 근본법칙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작은 부자는 노력이 만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만든다’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대부분의 부는 경제 이념이나 체제에 관계없이 언제나 소수에 의해 소유돼 왔다.

 포브스지가 발표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75인의 명단에는 183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이 열네 명(19%)이나 포함돼 있다. 또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대부분 1955년 전후에 태어났다. 미국의 산업혁명이 1860~70년 시작될 때 열네 명 부자의 나이는 30세 정도였고, PC혁명이 시작된 1975년에 IT 천재들의 나이는 20세 전후였다. 시대의 흐름과 만난 개인적인 우연이 이들을 역사적인 부호와 IT산업의 세계적인 리더로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또는 조금 더 늦게 태어난 사람들은 아무리 재능이 탁월하더라도 환경변화, 즉 하늘의 축복을 누리기 힘들었다.

 이 실험의 또 하나의 결론은 부익부 현상, 즉 큰 부의 이전은 투자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익이 위험의 선호에 비례하는 특성상 투자에서는 가진 자들의 성공 확률이 월등히 높아진다. 거래는 부의 분포를 평준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투자 수익은 일단 임계점을 넘어가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심각한 부의 불균형으로 귀착된다. 그래서 투자활동이 허용되는 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사전적 예방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당대의 현인들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부의 의미를 깨닫고 부의 극단적인 쏠림이 초래할 수 있는 재앙을 막기 위해 행동에 들어가고 있다. 자신들은 부를 축적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대리인(agent)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고 하늘이 맡겨준 부를 개인이 다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부자들을 설득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생전 또는 사후에 기부하는 기부약정(giving pledge)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기업인의 표상인 유일한 박사도 일찍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우리나라의 큰 부자들도 내가 이룬 재산 중 과연 얼마가 내 재능과 노력의 결과인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재능이나 노력의 성과를 넘어서는 잉여의 재산이 있다면 이를 환원하는 것이 청지기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한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대단히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대로 못 자고, 못 먹고, 못하고, 온갖 궁리를 다해 모은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하늘이 잠시 맡긴 돈이라는데….

김일섭 경영학박사·안진회계법인 회장·유한학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