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심었다더니 … 3월 또 배추대란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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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심었다더니 … 3월 또 배추대란 조짐

전남 해남에서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백영민(54·화원면 내월리)씨는 요즘 아침마다 밭에 나갔다 발길을 돌리곤 한다. 한창 월동배추를 수확할 시기인데 땅이 얼어 있어 출하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5000평에 이르는 배추 밭 대부분에 아직도 수북이 눈이 쌓여 있다. 백씨는 “지금 출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육이 안 되고, 나중에 눈이 녹으면 뿌리와 배추 속이 상해 못 쓰게 된다”며 “올해 농사는 상당히 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은 국내 월동배추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예년엔 이맘때쯤 하루에 5t 트럭 200~300대 분량의 배추가 출하됐다. 하지만 요즘은 배추 차량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해남 화원농협 오광준 대리는 “계약재배 물량의 경우 조기에 수확해 해동창고에 넣어 녹이고 있지만 언 땅에서 작업속도가 더디다”며 “저장성도 떨어져 3월부터는 배추 물량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봄에 다시 배추 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농촌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월동배추 생산량은 27만t에 그칠 전망이다. 평년의 37만t 보다는 10만t, 작황이 나빴던 지난해의 31만t 보다 4만t 가량 적다. 그나마 앞으로 날씨가 평년 기온을 회복해야 이 정도라도 유지할 수 있다. 요즘과 같은 날씨가 계속되면 20만t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당초 농림수산식품부는 월동배추가 평년보다 많이 수확될 것으로 예상했다. 재배면적이 평년보다 5%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배추 파동 때도 국민에게 “월동배추를 끌어 쓰면 문제가 없으니 김장 시기를 늦춰 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낙관적 예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날씨 때문이다. 12월 말부터 거푸 폭설이 내린 데다 낮은 기온이 유지되자 눈이 녹지 않고 밭을 덮은 채 얼어버린 것이다. 현장에서는 얼어버린 배추를 가져와 열흘 정도 따뜻한 바람에 녹인 후 출하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김재한 연구원은 “날씨가 계속 추우면 냉해 피해가 더 확대될 수 있다”며 “특히 3월부터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출하물량이 줄면서 최근 배추값은 상당히 올랐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서울의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배추 상품 한 포기 가격은 지난해 12월 중순 2950원까지 떨어졌지만 이달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21일에는 5175원을 기록했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은 편이다. 김장 담근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방학 중이어서 김치 수요가 많지 않다. 문제는 학교가 개학하는 3월부터다. 급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배추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포기당 1만원이 넘는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농식품부는 다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배추가 썩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수확해 저장할 수 있도록 작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중 3000t을 수매해 3월까지 비축할 방침이다.

지역농협의 계약재배량 중 1200t도 저장해 두었다가 봄에 풀 계획이다. 중국산 배추 2000t을 긴급 수입하기 위해 현지 조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확보할 수 있는 양이 1만t도 안 돼 부족분의 10%도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솔직히 봄배추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5월 초까지는 수급을 맞출 방법이 없다”며 “봄 추위까지 겹치면 봄배추 심는 것도 늦어져 배추 대란이 6월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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