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잡듯 기름값 뒤지는 정부 … 불똥은 정유업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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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고유가와 관련해 주유소를 상대로 하는 정유사의 불공정 영업 관행을 집중적으로 조사 중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17일 국내 4개 정유사를 방문해 주유소 영업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했다. 정유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유소의 공정 경쟁을 방해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 초점은 정유사의 이른바 ‘원적지 관리’에 맞춰졌다고 한다. 원적지 관리는 정유사가 매출이 높거나 상징적인 지역의 타사 주유소를 자사 간판(폴)으로 바꾸려고 이면계약을 해 저가로 제품을 공급하거나, 주요 주유소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또 기존 자사 주유소의 영업권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일정한 거리 안에 다른 사업자에게 주유소 라이선스를 주지 않는 영업 관행이 주유소 간 자유경쟁을 해치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주유소 간 거리를 제한하는 제도는 1995년 폐지됐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가까운 지역에 같은 회사의 주유소가 난립하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먼저 영업 중인 주유소 업주의 항의가 심하다”며 “상권 분석을 통해 내부적인 거리 제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전문점 등도 지점 간의 간격을 유지해 가맹점 영업을 배려한다”며 “정유사라고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또 일부 지역에서 정유사끼리 상권을 암묵적으로 나눠 상대 주유소의 영역에 자사 주유소를 내지 않는 담합행위가 있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는 이런 ‘나눠먹기식’ 주유소 영업 관행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현재 주유소가 포화상태에 다다랐을 정도로 수가 많아져 사실상 완전 자유경쟁을 하고 있다”며 “이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공정위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업계 분위기는 흉흉하다. 정부가 기름값 잡기의 표적으로 삼으면서 ‘비싼 기름값’의 원인 제공자로 몰린 데다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보복성 제보’가 있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2009년 12월 액화석유가스(LPG) 담합사건 때 SK에너지가 자진신고로 과징금을 감면받았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다른 정유사들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주유소의 불공정 영업 관행을 자진신고한 것 아니냐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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