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골프 비빔밥’ <3> 폼 나게 똑바로 보내겠다는 강박, 벗어던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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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비행기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한다. 출발하기 전에 항로를 꼼꼼히 챙기지만 비행기는 단 한번도 항로대로 날지 않는다.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예정된 항로를 끊임없이 벗어난다. 설정된 항로라는 것은 계획이고 실천의 지침일 뿐 어차피 실제 현실에서의 길이란 계획과 목적을 늘 벗어난다.

골프도 그렇다. 똑바로 멋지게 날려서 핀 옆에 딱 붙이고 싶지만 그건 계획된 항로일 뿐 우리의 실천은 목표와는 다르다. 목적한 방향, 목적한 거리, 의도한 구질로 공이 날아가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어쩌면 운이나 복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로를 따라 똑바로 날아가는 직진성 구질에 대한 환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한다. 똑바로 가지 않아서 스코어가 좋지 않다는 이상한 등식을 신앙처럼 받들고 있다. 내가 친 공이 똑바로 날아가느냐, 휘어서 날아가냐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어딘가 있는 비급을 찾듯 기술적인 지침들을 배우려 안달이다.

그런데 잠시 숨을 돌리고 물어보자. 과연 골프가 ‘너 얼마나 똑바로 가니?’를 묻는 게임인가? 정말 그런가? 혹시 ‘너 얼마나 일관성 있게 공을 보낼 수 있니?’를 묻는 게임은 아닌가? 휘어가고 굴러가더라도 일관성만 있다면 보기 아니라 싱글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다른 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해법을 찾게 된다. 직진성은 기술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일관성은 전혀 기술의 차원이 아니다.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고 무수한 반복의 결과물일 뿐이다. 혹자는 그런 반복 없이 쉬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왕도는 없다. 있다 해도 가보면 결국 그 시간 그 노력 다 들고, 오히려 더 들면 들었지 절대 절약된 바 없다.

또 이렇게도 얘기한다. ‘그래도 폼 나게 쳐야지! 휘어간다는 게 쫌!’

생각해 보자. 4명이 골프를 치는데 내 볼이 멋지게 날아가는 거 구경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 자신들의 멋진 골프를 꿈꾸며 온 거다. 눈 씻고 봐도 멋진 샷을 하는 사람 그리 흔치도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접대라는 골프의 애당초 목적을 생각해 보자면 4명 중 나 하나쯤은 ‘관광버스 볼’을 쳐서 사람들을 좀 즐겁게 해줘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 그게 더 목적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접근 아닌가.

게다가 멋진 폼이 꼭 좋은 스코어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내기 골프에서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멋지든 우스꽝스럽든 결국은 일관성이 좋은 사람이 승리하는 게 골프다. 이렇게는 얘기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스윙이 일관성을 담보하기는 쉬울 거라고. 또 간결한 스윙이 유지관리 비용이 덜 들 거라고. 그건 말이 된다. 그런데 간결함은 또 어찌 얻어지는 것인가. 그 또한 지루한 반복의 결과물이 아니던가.

폼도 좋고 스코어도 좋은 골프를 꿈꾸는 것이야 어찌 말릴까마는, 하루의 일상이 전쟁 같은 세월을 살고 있으면서, (프로가 될 것도 아니면서) 두 마리의 토끼를 좇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직진성을 포기하자. 그걸 포기하고 나면 새로운 골프의 지평이 열리면서 짐이 돼버렸던 골프가 ‘위로가 되는 친구’가 되어서 돌아온다.

마음골프학교(maumgolf.com)에서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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